한국에서는 무슨 재난·재해 훈련을 하나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까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한 훈련은 지진 대비 훈련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마저도 수업 진도를 나가야된다며 사이렌이 울리거나 말거나 운동장으로 대피해야 하는데도 불고하고 꿋꿋히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미국 학교에서는 화재 대비 훈련, 허리캐인 대비 훈련 등 다양한 재난·재해 훈련을 하지만 그중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총기난사 훈련이죠.
제가 무려 4년전 썼던 글 기억하시는 분 계실까요?
2014/08/12 - 나를 울린 미국학교의 실감나는 대비훈련
미국 생활을 막 시작했던 미국 교환학생 때의 이 총기난사 훈련은 학생으로서 참여한 것이여서 가만히 교실에 숨어있었지요.
미국인이라면 모두가 아는 총격범 대처방법!
Run! Hide! Fight!
도망가기! 도망 갈 수 없다면 숨기! 도망 가는것도 숨는 것도 불가능하다면 총격범과 맞서 싸우기! 인데요,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 당시 경험했던 훈련에서는 선생님이 많은 학생들을 다 데리고 총격범을 피해 도망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니 총격범이 교실안을 들여다 봤을 때 학생들이 보이지 않도록 복도쪽 교실 벽에 딱 부터 거의 한시간을 숨어있었습니다.
미국대학교 간호학과 학생이 되어 참여했던 제 생의 두번째 총기난사 훈련은 미국 고등학교때와의 훈련과 많이 달랐습니다.
고등학교때의 훈련은 총격범이 들어왔을 때 선생님의 지도 하에 조용히 숨는 연습이였다면 이번 훈련은 총격범이 들어와 많은사람이 총에 맞아 다치고 죽었을 때 어떻게 신속하게 환자를 분류하고, 처치하고, 병원으로 이송하고, 또 병원에서는 의료진들이 많은 희생자들을 어떻게 치료해야하는지에 초점을 맞춘 훈련이였지요.
그래서 지역 경찰, 소방관, 병원, 응급구조사(Paramedic), 저희학교를 포함한 두개의 간호대학이 참여한 큰 훈련이였어요.
정말 많은 경찰차, 소방차, 구급차에 헬기까지 동원되었으니 대충 짐작이 가시죠?
몇 주 전부터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간호학과 건물이 병원으로 쓰일 예정이고 많은 구급차에 환자들이 실려올 예정이니 놀라지 말라고 단체 메일을 보냈었고, 그럼에도 놀라는 사람이 있을까봐 학교 캠퍼스 곳곳에 재난 훈련중이라는 푯말을 꽂아놨더라고요.
지역의 헬스 페어나 크고작은 건강과 관련된 행사가 있을 때 언제든 (강제)동원되는 간호학과 학생들은 역시 이번에도 총기난사 훈련에 동원되었지요.
이번 봄에 저희학교 4학년 학생들이 이미 대형 교통사고에 대비한 큰 훈련에 참여했어서 이번에는 사실 저희 학교 근처의 전문대 간호대생이 우선이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훈련에서 저희학교 학생들 대부분은 총기난사의 피해자 역할을 했었지요.
훈련에 가기 전에 이미 교수님께서 누구는 걸을 수 있는 환자, 누구는 지역의 병원 응급실로 실려갈 중환자, 누구는 우리 학교로 실려올 중환자, 누구는 간호사 등등 각자의 역할을 정해주셨습니다.
"우리학교로 실려올 중환자"역이였던 저는 21년 인생동안 한번도 타 본적 없는 구급차를 탄다는 생각에 설레고 신이났었답니다.
오전에만 있던 수업이 끝나고 오후에 같이 훈련 할 학교 근처의 전문대에 모여 디테일한 역할이 적힌 카드목걸이를 받고 역할에 맞는 특수 분장을 받았습니다.
총상부터 유리 파편이 박힌 상처, 그리고 칼에 찔린 상처등등 실감나는 특수분장들이이였어요.
총격범에 쫒겨 도망가다 다친 사람역의 친구 A, 눈에 총을맞은 사람역의 친구 B, 그리고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을 맞은 역의 저 (셀카여서 좌우가 바뀌어 보여요.)!
이렇게 특수분장을 받고 잠시 기다리다가 총기난사가 벌어질 체육관에 모였습니다.
친구들과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 하고 있는데 총격이 시작되었지요.
어찌나 실감나던지 총소리와 폭탄터지는 소리가 계속 들리며 총으로 무장한 총격범이 총을 들고 체육관으로 들어와 총 쏘는 시늉을 하며 돌아다니더라고요.
한바탕 총격이 벌어지고 나니 무전기 소리와 함께 총을 든 경찰들이 체육관으로 들어와 총격범을 제압했지요.
저희 학교 학생들을 포함해 피해자 역을 맡은 사람들의 연기도 실감났습니다.
여기저기서 Help! Help! 를 외치며 울먹이던데 살려달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죽어가고 있던 저는 피해자들의 연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그래. 이번 생은 간호대학을 다니느라 힘들었지만 그래도 꽤 좋은 인생이였어."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총격범이 제압되고 경찰들이 걸을 수 있는 부상자나 다치지 않은 사람들을 체육관 밖으로 대피시켰는데, 제 친구중 한명은 머리에 총을 맞고 엎어져 쓰러진 저를 똑바로 눕히더니 경찰을 부르며 제 친구가 죽어가고 있다고 울먹이며 도움을 요청하더라고요.
이 모습이 지역 TV 뉴스에도 나왔어요!
걸을 수 있는 경미한 부상자들은 체육관을 떠나고 다리에 총을 맞아 걸을 수 없는 환자들과 중환자들만 체육관에 남고나니 응급구조사들이 구급차 안에 들어가는 침대들을 끌고 들어와 이번 훈련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Triage(치료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한 부상자 분류)를 시작했습니다.
난생 처음 구급차를 탄다는 생각에 신났던 저, 마침내 구급대원들이 저에게 다가오더니 제 맥박을 체크하고 저를 흔들며 괜찮냐고 말을 시켰지요.
제 역할대로 기가막히게 의식없는 환자 역을 하고 있는데 제 목에 걸린 역할 카드를 보고 Triage 카드를 제 배 위에 올려놓더니 "얘 죽었어." 라며 무심히 떠나버리더라고요.
(출처: 구글)
제 배위에 올려진 Triage 카드를 보니 빨리 응급실로 이송하라는 빨간색, 조금 기다렸다 이송해도 된다는 노란색, 그리고 경미한 부상이라는 초록색 부분은 모두 떼어져있고 Morgue 만 붙어있더라고요.
Morgue? 영안실이라니요?
환자들을 Triage 하는 응급구조사들.
훈련에 참여한 사람들의 안전을 훈련 내내 신경쓰던 관계자들의 모습도 인상깊었고요.
출처: http://stelladiary.tistory.com/159 [스텔라의 미국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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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사람이 생명을 잃는 슬픈 총기 난사 사건이 더 이상 잃어나지 않길 바라며 글 이만 마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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