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5살의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으로 처음 미국 땅을 밟았던게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미국 생활 5년차입니다.


여름방학때마다 한국에 가다가 지난 여름엔 간호대 여름학기 수업을 듣느라 한국에 가지 못해 이번 겨울방학때 일년 반만에 한국에 다녀왔었지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랐음에도 불고하고 미국에서 사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매번 한국에 갈때마다 빠른 속도로 변하는 유행과 한국의 문화가 낯설게 느껴지더라고요.


교환학생이 끝나고 한국에 갔을 땐 많은 사람이 카드지갑을 목에 걸고 다니고 있어서 신기했던 기억이 나고 언젠가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에 갔을 땐 너도나도 목에 선풍기를 걸고 다니는 모습에 재미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따뜻한 조지아주에서 살다가 4년만에 한국에서 맞은 이번 겨울엔 여기저기서 팔고 있는 귀가 움직이는 토끼모자가 신기해서 몇번 만져보기도 했었지요.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유행과 문화가 한국의 유행과 문화에 비해 익숙하고 훨씬 편하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한국에서 5년 살다오신 미국인 선생님께서 외국에서 오래 살다보면 미국이나 한국에 사는 것이 똑같이 편해지는게 아니라 두 나라에 사는 것 모두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말씀 해 주신 적이 있는데 유학생활 5년차가 되니 그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 할 수 있게 된거지요.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행동이 미국에서 이상하게 비추어 질 수 있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미국에서는 평범한 행동이 한국에서는 이상하고 무례하게 보여질 수도 있지요.


이번에 한국에서 겨울방학을 보내며 의도하지 않게 미국에서 하던 행동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와 제 자신이 부끄러웠던 적이 있답니다.


비록 상대방은 제 행동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에요.


게다가 미국에서는 일상적인 행동이라 제 자신도 저의 행동이 무례했다는걸 계속 알아차리지 못하고있었어요.


미국에 돌아오기 며칠 전, 약국에 처방전을 갖다 내다가 제 행동이 무례한 행동이라는 걸 알아차리게 되어 처방전을 건네주며 제 행동에 저도 깜짝놀랐었답니다.


한국에 머물던 3주동안 습관적으로 나오던 미국에서는 평범한 행동이지만 한국에서는 무례한 이 행동, 궁금하시죠?


한국에 비해 훨씬 따뜻한 조지아주에서 살다가 4년만에 추운 한국의 겨울을 보낸 탓인지 한국 출국 직전까지도 저는 감기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답니다.


감이 아닌지 검사를 하고 독감이 아니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그나마 가벼운 발걸음으로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약을 지으러 갔었지요.


처방전을 받아주시는 분께 평소처럼 한손으로 처방전을 휙~ 건네주었답니다.


이때, 제 행동이 무례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었지요.


한손으로 처방전을 건네주며 펄럭이는 종이 때문이였는지 윗사람에게 한손으로 무엇인가를 건네는 것이 무례하다는걸 그때서야 기억하게 되었어요.


생각해보니 한국에 있던 3주 내내 물건을 사고 신용카드를 건네줄 때와 계산이 끝나고 신용카드를 돌려받을 때를 포함해 저보다 윗사람에게 무엇인가를 건네고 받을 때 두손으로 받았던 적이 있었나 싶더라고요.


미국에서는 윗사람에게 무엇인가를 건네주거나 윗사람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을 때 두손으로 받아야 된다는 예절 자체가 없거든요.


그래서 미국에 오래 살다보니 상대방이 누군지에 상관없이 저도 한손으로 물건을 주고받는게 습관이 되었고 오랜만에 한국에 온 탓에 윗사람에게는 두손으로 물건을 건네고 받아야한다는 것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거예요.


학교에서 제 숙제를 교수님께 제출할때나 교수님이 주시는 프린트물을 받을때도 항상 한손으로만 주고 받았지 교수님이 저보다 윗사람이라고 해서 두손으로 주고 받는일은 없어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한손으로 무엇인가를 건네고 받는다고 해서 예의없다거나 무례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이 글을 쓰다보니 제 블로그에 자주 등장했던 카너와 미국 교환학생 시절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네요.


카너와 저는 그 시절 같은 교회에 다녔었는데 교회에 가면 항상 같이 옆자리에 앉았었답니다.



카너와 같이 다니던 교회.

한국의 설날에 한복입고 교회에 가서 피아노를 연주했어요. 

한복 입은 김에 교회 끝나고 카너랑 사진도 많이 찍었고요.


목사님의 설교가 끝나고 헌금을 내는데 카너가 대뜸 저에게 돈이 무겁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카너가 물어보는 질문의 의도를 몰라서 무슨말이냐고 되물으니 돈이 무거워서 항상 헌금통에 두 손으로 헌금을 넣는거냐고 헌금을 두손으로 내는 이유를 물어보는거였지요.


헌금은 단순히 헌금통에 돈을 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여서 두손으로 공손히 넣어야 된다고 어렸을때부터 배웠다고 카너에게 이야기를 해줬는데요, 카너는 미국에서는 그냥 한 손으로 넣어도 된다고 말 해주더라고요.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그냥 한손으로 헌금통에 돈을 넣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적응이 안되고 참 낯설게 느껴졌던 기억이 나네요.


상대방이 누구인지에 상관없이 한손으로 물건을 건네거나 받는게 당연한 미국문화,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시나요?


미국에서의 습관이 몸에 밴 탓에 한국에서 의도하지 않게 무례했던 제 행동에 반성하며 이번 글 마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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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dorable Stella

미국 간호학생으로서 병원으로 실습을 나가다보면 동양인이라는 것이 참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병원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주위를 둘러보면 흰 가운과 스크럽을 입고 점심을 먹는 동양인 의료진들이 참 많은데요, 처음으로 병원 실습을 갔을 때 동양인들이 많은 것이 너무 신기해서 이리저리 둘러보느라 정신없는 점심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나네요.


그들이 어느 나라에 뿌리를 둔 동양인인지는 모르지만, 그저 저와 같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미국에서 의사, 약사, 또는 간호사로 멋지게 일하고 있다는 것이 간호학생인 제 눈에는 마냥 멋있고 자랑스러운 거죠.


제가 지금까지 실습을 나갔던 병원들은 동양인들이 많이 살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많은 동양인들을 봤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미국에서 약 5%의 비율을 차지하는 동양인은 애틀란타,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 한인타운, 차이나 타운이 있는 큰 도시에서는 정말 흔히 볼 수 있지만 제가 실습을 나가는 중소도시에선 한 두명 볼까말까 한 수준입니다.


그러니 제가 처음 실습을 갔을 때 얼마나 신기 했을지 상상이 가시지요?



실습을 시작 하기 전 실습 담당 선생님을 기다리며 친구 A와 유리문에 비친 모습을 찍은 사진이에요!


산부인과 실습을 처음 갔던 날, 저랑 반에서 가장 친한 백인 친구 A와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출산이 임박한 산모의 아기 낳을 준비를 끝내고 의사선생님을 기다리는데, 너무 예쁜 모델같은 여자분이 들어와 아기를 받아주더라고요.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보느라 늦은 점심을 먹으며 친구와 저는 그 의사선생님 너무 예쁘지 않았냐며, 모델 하면 돈 더 잘 벌었을텐데 왜 의사가 되었는지 궁금하다고 웃으며 얘기를 했었지요.


(나중에 알고보니 의사인줄 알았던 그 모델같은 여자분은 의사가 아니라 미국의 산부인과 전문간호사인 널스 미드와이프였어요.)


얘기를 하면서 A가 했던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아기를 받아주러 늙은 인도계 의사선생님 들어 올 줄 알았는데, 젊고 예쁜 의사선생님이 들어와서 깜짝놀랬잖아!"


실제로 미국에 인도계 의사가 많아서 친구의 말을 듣고 그때 당시엔 웃었지만, 그 상황이 지나고 지나고 보니 웃기만 할 일은 아니더라고요.


돌이켜 생각 해 보니 친구의 말은 인종적 고정관념과 편견이 가득 들어있는 말 이였잖아요.


제가 실습을 나갔던 산부인과 병동에도 동양인 산부인과 의사와 동양인 레지던트가 있었습니다.


병원을 돌아다니다보면 동양인 의사나 레지던트가 정말 많고 동양인 약사와 간호사도 마찬가지로 많아서 같이 실습을 하는 미국 친구들도 종종 동양인이 많다며 신기해하곤 하는데요, 그러면서 꼭 덧붙이는 말이 "동양인들은 정말 똑똑하구나. 다 의사, 약사, 간호사네!" 입니다.


같이 산부인과 실습을 했던 A의 말에도 그 친구가 평소 생각하고 있었던 "동양인은 똑똑해서 많은 의사가 동양인이다." 라는 의마가 담겨 있었던 거지요.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 때 부터 간호예과(미국 대학교 1,2학년)를 끝내고 간호본과(미국 대학교 3,4학년)에 입학해 졸업을 10개월 앞둔 지금까지 미국 친구들로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모든 시험들을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항상 열심히 공부하지만 항상 자신있는 것은 아니죠.


같이 공부하다가 내일 있을 시험이 걱정된다고 말하면 미국 친구들 중에는 "너 동양인인데 뭐가 걱정이야. 시험 잘 보겠지!" 라며 저를 위로해주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웃어넘겼지만, 이제는 아니죠.


"내가 시험 잘 본건 내가 동양인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열심히 공부 했기 때문이야!"


제가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공부하며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간호학과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매주 있는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제가 매일 얼마나 공부하는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으니 미국친구들 눈에는 본인들의 언어로도 하기 힘든 간호학과 공부를 외국인인 제가 척척 해내니 "쟤는 그냥 동양인이라 똑똑한가보구나." 라고 생각하는거지요.


동양인들은 당연히 똑똑할 거라는 미국인들의 편견때문에 매 시험때마다 잘 봐야한다는 부담감도 들고요.


미국에서 동양인은 소수임에도 불고하고 인종비율 대비 성공한 사람들이 많아서 같은 동양인으로서 자랑스럽고 뿌듯하지만 그들의 피나는 노력을 알아주는 대신 "저 사람은 동양인이잖아. 동양인이니까 당연히 똑똑하겠지." 라고 치부해버리는 미국인들의 편견때문에 마냥 뿌듯하지많은 않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모든 사람이 성공 할 순 없지만, 성공한 사람 중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테니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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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간호학은 재미있었지만 좋아하는 과목은 아니였습니다.


왜 건강하게 뛰어 놀아야 할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이 병원에 누워있는것인지, 마음 약한 저에겐 아픈 아이들을 보고 있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였거든요.


지난학기 성인 간호학(1)을 배우고 실습을 나가며 아픈 사람들을 많이 봤었지만, 말 그대로 성인 간호학인지라 제가 실습을 가서 만났던 환자들은 대부분 노인이였지요.


폐렴, COPD (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만성 폐쇄성 폐질환)등 다양한 폐질환을 치료하던 폐 병동으로 실습을 나갔었는데 노인환자들의 차트를 보면 담배를 몇 십년 피던 환자도 있었고 마리화나 등의 마약을 하던 사람들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나이에 관계 없이 질병을 앓게 되어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잘못된 식습관과 함께 담배를 십대때부터 펴 온 80대 환자가 폐 질환을 앓게 되는 것은 예상 할 수 있는 일이고 80년 이상의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환자가 왜 아픈지 슬프더라도 저 스스로 이해하고 받아드릴 수 있었지요.



아동간호학 실습을 나갔던 병원의 건물들 중 하나.


하지만 아동간호학 실습을 위해 어린이병원에 갔을 땐 특별한 원인 없이 아픈 아이들을 보며 실습내내 마음이 아팠고 실습을 하고 기숙사에 돌아와서도 하루종일 우울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제 어렸을 때를 생각 해 보면 엄마, 아빠께 사랑받으며 건강하게 유치원에 다니고 저보다 두살 어린 여동생 "이야"랑 신나게 놀던 기억뿐인데, 다양한 이유로 병원에 입원한 아이들을 보니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아동간호학 수업 중 실습에 나가서 만났던 환자들의 이야기를 종종 나누는 경우가 있는데, 아동학대를 당하다 부모가 병원 앞에 버리고 도망간 아이 이야기부터 물에 빠져 의식불명으로 소아중환자실에 왔다가 하늘나라에 간 아이 이야기까지 눈물 없이 듣기 힘든 이야기뿐이였답니다.


일반 병동에는 단순한 질병으로 입원한 아이도 많아서 입원 했다가 며칠 뒤에 건강하게 퇴원하는 해피앤딩이 대부분이였지만, 소아중환자실에서 실습 하던 날 만났던 환자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제 환자였던 중증 근무력증을 앓으며 평생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아야 하는 아이 A, 그리고 초등학생의 몸으로 식물인간 상태였던 25살의 환자까지 소아 중환자실은 이 세상과는 완전 동떨어진 곳 같았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흑인 남자아이 A를 처음 만나서 제 소개를 하고 침대에 쉬를 해서 제 간호사선생님과 함께 Bed bath (침상목욕)를 시켜줬는데 몸이 어찌나 야위였던지 보는 제가 다 안타까웠습니다.


워낙 오래 입원하고 있던지라 병원생활에 익숙해 졌는지 손가락에 스스로 산소포화도 센서를 붙이고 간호사 선생님과 노는 모습이 참 귀여웠지요.


제 간호사 선생님이 다른 일을 하는 동안 A와 함께 잠깐 시간을 보냈는데, 저에게 자신의 게임 유튜브 채널을 보여주며 구독해 달라고 하기도 하고 다음주면 이 병원을 떠나 애틀란타에 있는 더 큰 병원으로 간다고도 얘기 해 주더라고요.


너무 해맑고 즐거워 보이던 아이여서 A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제 마음이 더 아팠답니다.


간호사 선생님 말로는 많이 호전되면 퇴원해서 학교도 다시 다닐 수 있게 될거라고 했지만 평생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아야 한다는 것과 더 큰 병원으로 옮겨가야한다고 하니 호전되기까진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A다음으로 유난히 더 정이 갔던 환자는 영어를 잘 못하던 맥시칸 남자아이 B였습니다.


환자 차트에 B는 영어를 조금 알아듣는 수준이고 B의 엄마아빠는 스페인어만 할 줄 알고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한다고 되어있었는데요,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제 상황 같아서 다른 환자들보다 더 신경이 쓰였었지요.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미국인들이 많아서 대부분의 병동엔 스페인어를 하는 간호사가 있고 스페인어만 하는 환자의 경우는 스페인어를 쓰는 간호사가 배정되는데, 그날따라 병동에 스페인어를 하는 간호사가 없어서 영어만 하는 간호사가 그 환자에게 배정되었답니다.


간호학 교과서에는 환자가 영어를 하지 못할 경우 가족이 아닌 전문 통역사를 부르라고 써 있어서 영어만 할 줄 알던 B의 간호사와 B와 B의 가족이 정말 통역사를 통해 대화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아침일찍 B의 병실에 들어가 간단한 영어만 알아듣는 B와 손짓 발짓을 총 동원해 대화를 하다가 B의 부모님과 이야기 할 차례가 되자 간호사는 벽에 붙어있던 두개의 수화기 중 하나는 B의 엄마에게 주고, 하나는 본인이 들어 스페인어 통역 요청을 하더라고요.


"아이가 수술 후 빨리 회복 할 수 있도록 이따가 아이가 복도에서 걷도록 도와줄게요." 라고 간호사가 아이의 엄마를 보고 말하면 수화기를 통해 통역사가 듣고 있다가 스페인어로 B의 엄마에게 말 해줬습니다.


반대로 B의 엄마가 수화기를 들고 간호사를 보고 스페인어로 이야기하면 수화기 넘어의 통역사가 영어로 간호사에게 이야기 해 주었지요.


교과서에서만 보던 통역을 실제로 보게 되서 신기했고, 실제로 통역사가 병실에 오는 것이 아니라 전화를 통해 통역을 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얼마나 불안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필요한 것은 없는지, 불편한 것은 없는지 등을 물어보며 B의 부모님에게도 유독 더 신경을 썼던 기억이 나네요.


마음이 약한 탓에 어린이 병원에서 아픈 아이들을 보며 실습중 화장실에 가서 감정을 추스르고 와야 했던 적도 많았고, 아이들에게 주사를 놓는 것을 보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고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아동간호학 실습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마음이 아파서 아이들에게 주사 놓는 것이 싫고 아파서 우는 소리가 듣기 힘들것 같아서 소아과 간호사는 생각도 안해봤는데, 아동간호학 실습을 끝내고 보니 "이 세상에 건강한 아이들만 있을 수 없고 누군가는 아플 수 밖에 없다면 내가 소아과 간호사가 되서 진심으로 아이들을 간호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약해서 소아과 간호사는 절대 될 수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실습을 하고 나니 "마음이 약해서 아픈 아이들을 더 정성껏 간호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바뀐거지요.


그리고 건강하게 태어나 학교에 다니고 먹고 싶은 음식을 맘껏 먹을 수 있는것, 많은 사랑을 받고 자라서 다른사람에게도 제가 받은 사랑을 배풀 수 있다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큰 축복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고요.


눈물이 많고 마음이 약한 저, 아동간호학 실습중엔 눈물이 날 것 같으면 화장실로 도망가서 감정을 추스르고 꾹꾹 참았지만 산부인과 실습 중 울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환자앞에서 울어버린 이야기도 곧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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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telladiary.tistory.com/153 [스텔라의 미국이야기]

Posted by Adorable Stella

제가 중학교를 막 졸업하고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을 알아보고 준비하던 시절, 유학을 이미 갔다온 제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습니다.


"미국에 10개월 살다온다고 해서 영어로 자유롭게 소통 할 수 있는건 아니야."


"3년 이상은 살다와야 의사소통에 큰 문제 없이 영어 할 수 있지 10개월 가지고는 안돼!"


남들과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성격 덕에 어렸을 때는 그저 길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영어학원에서 배운 단어와 문장들을 조합 해 말 거는 것을 좋아했었지요.


어릴때는 영어를 즐기며 배웠지만 크면서 학교 내신영어와 수능영어를 하다보니 영어를 배우는 것에 지치게 되었고, 중학교때부터는 흥미를 완전히 잃어서 영어를 무서워 했고 잘 하지도 못했습니다.


주변사람들의 진심어린 걱정에도 불고하고, 저는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가 끝나고 교환학생 자격으로 미국에 와 미국인들이 다니는 미국 공립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가 2012년 9월이니, 벌써 5년도 더 된 이야기네요.


주변사람들의 걱정과는 다르게 10개월동안 제 영어실력은 정말 많이 늘었습니다.


미국에 막 도착했을 때만 해도 불가능했던 미국인과의 의사소통을 한국에 올 때 쯤엔 별 불편함 없이 할 수 있게 되었지요.


미국 생활 중엔 사실 영어가 얼만큼 늘었는지 잘 몰랐지만, 미국에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한국에서 원어민 강사로 일하고 있는 딸을 만나러 간다는 미국인 아줌마랑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다보니 제 영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걸 느낄 수 있었답니다.


4년차 유학생인 저에게 저희학교 ESL(=대학교 내의 영어학원)에 다니는 한국인들은 미국에 오면 저절로 영어를 잘하게 될 줄 알았다는 말과 함께 제가 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는지, 영어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되는지 물어봅니다.


대학생이 되고, 유학 4년차가 된 지금은 영어를 잘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니 지금 이야기는 제외하고, 교환학생때로 돌아가서 10개월동안 제가 어떻게 영어 실력을 늘렸는지 초보 유학생들을 위한 팁들을 몇가지 알려드릴게요!


1. 한국어를 쓰지 마세요!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600명 정도의 학생 중 동양인은 저 혼자였습니다. 


그렇다보니 당연히 한국어를 말할 일도, 말할 기회도 없었지요. 


미국 생활에 잘 적응 할 수 있을까 걱정하셨던 엄마아빠는 제가 한국 친구들과 연락하면 향수병에 걸릴까 한국 친구들과 연락도 못하게 하셨었고, 게다가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살던 10개월 동안 엄마, 아빠랑 통화도 거의 안했거든요.


교환학생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 한국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보고 미국대학교 유학을 준비해 다시 미국에 돌아와 지금은 간호학생이 되었지만, 교환학생 당시만 해도 저는 한국 학교에 다시 돌아갈 생각이였습니다.


돌아가면 다시 미국에 올 일이 없을 것 같았고 어떻게 온 유학인데 10개월 만큼은 미국화 되어 미국인들처럼 살아가야겠다고 독하게 마음먹고 인터넷으로 한국 TV도 보지 않았습니다.


교환학생을 오기 전 인터넷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모국어를 쓰면 외국어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확실히 떨어진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 한국어 사용을 최대한 줄였지요.


성적이 중요한 정규 유학생이면 수업을 고를 때나 시험을 준비할 때 한국인 선배들의 조언이 필요하니 한국인들과의 교류도 중요하지만, 미국 대학교 교환학생이나 단기 어학연수의 경우는 최대한 미국인들과 어울리며 한국어 사용을 줄이세요!


2. 영어를 못해도 무조건 영어로 많이 말하세요!


영어가 서툴고 실수할까봐 걱정돼서 미국에 왔음에도 불고하고 같은 처지의 한국인들하고만 어울리면 미국에 온 보람도 없을 뿐더러 영어실력은 늘 제자리겠지요.


영어를 잘 못하고 미국친구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도 자꾸 어울리다보면 서로에게 적응하게 되어서 서로의 말을 잘 알아듣게 되고 편한 사이가 되면 틀린 문법이나 발음은 미국 친구들이 고쳐주기도 한답니다.


틀린 문법이나 발음을 지적하고 고쳐주는 것이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이 많다고 해서 저는 미국 친구들에게 제가 틀리게 말하면 고쳐달라고 했었어요.


그랬더니 "너 지금 그 문법/발음 틀렸어! 나 따라해봐!" 라며 제가 바르게 말 할때까지 몇번이고 다시 알려주곤 했었지요.


가끔 급한 상황에 제 말은 듣지 않고 자꾸 제 틀린 영어를 고쳐주기도 해서 답답하기도 했지만요!


어떤 일이 있었냐면요, 학기초 체육시간에 소프트볼을 하는데 게임 규칙도 몰랐던 저에게 체육선생님이 아웃이라며 나가라고 하셨어요.


저와 막 친해진 카너와 다른 친구들에게 제가 억울해하며 "Why me out?" 이라고 말하니 제가 아웃인 이유는 설명해 주지 않고 카너와 친구들이 "Why me out? 아니고 Why am I out? (나 왜 아웃이야?) 이야. Why am I out? 이라고 다시 말해봐!" 라고 말하더라고요.


3. 학교나 교회행사에 많이 참여하세요.


미국 생활 중 가장 안전하게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는 학교행사나 교회행사예요.


미국문화와 영어를 배우고 싶어서 저는 학교 홈커밍 파티 준비 봉사를 하기도 했었고, 학교의 댄스파티나 행사에 열심히 참여했었어요.


아무리 수업중에 토론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많다고 해도 학교 수업만으로는 친구들과 가까워지는데 한계가 있거든요.


종교가 없더라도 교회에 나가는 것도 영어실력을 높이는 좋은 방법중 하나인데요, 교회에 청소년들이나 대학생들을 위한 모임이 있어서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게임을 하기도 하고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놀러가기도 해요.


저도 교환학생때 교회 행사에 거의 매주 참여했는데, 영화도 보러가고 볼링장도 가고, scavenger hunt (물건찾기 게임), Frisbee (원반던지기) 등 재미있는 활동을 많이 했었어요!


교회 친구들 대부분이 학교 친구들이라 자주 만나다보니 편한 친구들이 생겼고, 영어실력도 늘었고, 미국문화도 많이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요.


4. 호스트 패밀리와 친하게 지내세요.


호스트 패밀리 (홈스테이 가족)만큼 좋은 영어 선생님도 없어요.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의 경우 미국인 가정에 배정을 받게 되는데, 호스트 패밀리와의 관계가 어땠는지에 따라서 학생들의 영어실력은 천차만별인것 같습니다.


저는 무리해서 온 교환학생인데 10개월간 뽕을 뽑고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에서 호스트맘과 함께 보냈습니다.


학교에 오자마자 거실 쇼파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오늘 학교에서 점심으로 뭘 먹었는데 맛은 어땠고, 친구 누구랑 무엇을 하며 놀았고, 미술 시간에 무슨 그림을 그렸고, 체육시간엔 무엇을 했는지 호스트맘께 항상 말씀드렸습니다.


호스트맘께서 제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모르셨던 미국 생활 초기, 제가 학교에서 무슨 음식을 먹었는데 이름은 모르겠고 맛있었다고 하면 호스트맘께서 친구들한테 급식이 뭐였는지 물어보라고 하셨었지요.


음식이름을 알아와서 호스트맘께 말씀드리면, 며칠 뒤 저녁에 그 음식이 테이블에 있었답니다!


항상 호스트맘을 쫓아다니며 영어로 재잘재잘 말하니 호스트맘께서도 저를 좋게 보셨고 저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시려고 하셨지요.


한국에서 전화영어나 원어민 수업을 하려면 비싼데 호스트패밀리와 대화하는건 꽁짜이니 기회가 있을 때 열심히 영어로 말하고 배워야지요.


미국까지 가서 방에 혼자 들어앉아 호스트패밀리와 담쌓고 살지 마세요!


5. 영어가 서툴러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자신있게 말하세요!


처음 미국에 유학을 왔을 때부터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어요.


영어를 잘 못하고 미국친구들의 말을 못알아듣는다고 해서 기죽지 말고, 미국 친구들에게 내가 미국에 온지 얼마 안되서 영어가 서툰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대부분 다 잘 도와준답니다.


미국사 시간 첫날, 처음만난 제 짝궁 잭에게 내가 영어도 서툴고 미국 역사는 하나도 몰라서 너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하니 제가 헤메고 있거나 멍때리고 있으면 지금 뭐 해야되는지 이해 했냐고 물어보며 저를 잘 챙겨줬습니다.


영어를 못해서 아무말도 안하고 있거나 기죽어 있지 않은 이상 영어를 잘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놀리거나 무시 할 사람은 없어요.


영어를 못한다는 핑계로 그룹프로젝트 (=팀플)에 무임승차하거나 도움이 필요한데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으면 미국친구들도 사람인지라 짜증이 나고 무시하게 되겠지요.


모르면 물어보고 영어가 서툴러서 도움이 필요하면 자신있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영어가 서툰데도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에 감동받은 미국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잘 도와줄거예요.

 

유학을 막 시작한 초보 유학생분들, 그리고 유학을 준비하시는 분들께 제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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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시거나 미국의 하이틴 영화를 본 적 있으신 분들은 미국 고등학교의 파티에 대해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 해 보셨지요?


오늘은 많은 분들이 궁금 해 하실 미국 고등학교의 파티 문화에 대한 글을 가져왔어요!


학교에 따라서 파티의 종류와 파티의 컨셉이 조금씩 다른데,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를 기준으로 미국 고등학교의 파티가 어떤지, 파티에서 무엇을 하는지 재미있는 미국 고등학교의 파티 문화를 소개 해 볼게요.


제가 다녔던 미국 고등학교에는 일년에 네개의 파티, Homecoming Party (홈커밍 파티-9월 말), Winter Formal (윈터 포멀-1월 중순), Sadie Hawkins dance (새디 호킨스 댄스-2월 말), 그리고 여러분들께 가장 친숙할 졸업파티인 Prom (프롬 파티-4월)이 있었어요.


9월에 새 학년이 시작하고 나서의 첫 파티였던 홈커밍 파티는 , 9월 말에 고등학교 풋볼 경기 시즌 마지막 홈 게임 하는 날, 홈 게임이 끝나고 있던 파티였어요. 



홈커밍 파티에서 미국 친구들과.


다른 학교의 경우 보통 여자는 드레스를, 남자는 턱시도를 입고 하는데 저희 학교는 캐주얼 파티여서 홈커밍 퀸과 홈커밍 퀸 후보들을 제외하고는 사복 입고 갔었어요.


반면에 제 동생이 다녔던 고등학교의 홈커밍 파티는 영화에서 보던 대로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가야했던 파티였어요.





자주색 드레스를 입은 제 동생과 동생 친구들이에요.

홈커밍 파티에 가기 전 모여서 사진을 찍고 파티에 갔었데요!


학교 파티에 가면 클럽처럼 DJ가 와서 노래를 틀어주고 춤을 추면서 노는데, 신나는 댄스도 있고 커플로 추는  신데렐라 무도회 춤 같은 슬로우 댄스도 있어요.


 

제가 찍어 온 홈커밍 퀸과 후보들의 댄스예요!

고등학생들이라는게 믿겨지지 않지요?


1학기 말 이였던 1월 중순에 있었던 윈터포멀 파티는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파티의 데이트 상대가 되어 같이 가자고 물어봐야 했던 파티였어요.


물론 혼자 가도 되지만, 커플 댄스도 춰야하고 대부분 다 커플로 오니 윈터포멀 파티 한 두달 전 부터 여자친구가 없는 남학생들을 파티에 같이 갈 파트너를 구하느라 바빴답니다.


저는 커플로 갔을까요? 


네! 저는 저와 가장 친한 미국친구 카너가 파티에 같이 가자고 물어봐 줘서 카너랑 커플이 되어 같이 갔었어요.

 

어느 날, 점심시간에 점심 급식을 받아서 항상 같이먹는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 갔는데, 그 날 따라 친구들이 자리에 온 저를 보고 난리가 난 거예요.


이 친구들이 왜 이러나 싶었는데, 제가 자리에 앉으니 친구들은 조용해 지고 카너가 저에게 윈터포멀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물어보더라고요!

 

사실 입 싼 (=고마운) 제 미국 친구들이 더 신나서 저에게 "카너가 너에게 파티에 같이 가자고 물어볼건데 Yes 라고 대답 할꺼야?" 라고 오래 전 부터 다 말 해줘서 카너가 곧 물어 볼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어요.


카너 말고도 두 명의 친한 남자 사람친구들이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물어봤는데, 카너랑 이미 같이 가기로 해서 거절했었답니다!


당시에 카너는 만 15세여서 차 운전을 못했는데, 그래서 카너의 엄마 메리가 운전 해 주시고 카너가 파티날 저를 데리러 왔어요.


미국에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파티에 같이 가자고 물어봐서 같이 가게 되었을 경우 여자를 데리러 가야하고, 손목에 다는 코사지도 사줘야 하고, 레스토랑에 가서 밥도 사 줘야 되고, 학교 파티 티켓 (저희 학교의 경우 윈터 포멀 티켓 값이 싱글 $20, 커플 $30이였어요.) 값도 다 내줘야 해요.


이 날 만큼은 더치페이 같은 건 없어요. 


남자가 여자를 공주처럼 대우 해 주고 여자를 위해 희생하는 날 이에요.


제 호스트맘 집에서 사진을 찍고 카너네 집에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메리가 카너네 집에 저와 카너를 보기 위해 친척들이 와있으니 놀라지 말라고 말 해 주셨는데, 카너 집에 친적들이 정말 많이 와 있었어요.



파티 준비를 다 끝내고 카너를 기다리면서 호스트맘이 찍어주신 사진이에요.

아침 일찍 미용실에서 머리 하고 왔어요.



호스트맘 집에서 서로를 위해 준비한 꽃을 교환했어요.

남자는 여자를 위해 손목에 다는 꽃을 사고 여자는 남자의 가슴에 달아 줄 꽃을 사요.

제 드레스 색깔에 맞춰서 저랑 카너 둘다 파란색 반짝이가 뿌려진 꽃으로 준비했는데, 파티에서 너무 격렬하게 놀아서 꽃이 많이 떨어지고 시들었어요. 

그래도 예쁘죠?


카너 집에서 사진 찍고 친구 두 명을 픽업해서 넷이서 레스토랑에 가 저녁을 먹었어요.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카너가 사준 맛있는 저녁을 먹고 카너네 집에서 놀다가 밤 9시 쯤 학교에서 하는 윈터포멀 파티에 갔어요!


커플로 파티에 같이 가게 되면 여자의 드레스 색깔에 따라 남자는 똑같은 색깔의 턱시도를 사거나 빌려요.



파티에서 미국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에요.



파티에서 카너와 슬로우댄스를 추고있는데 친구가 찍어준 사진이에요.

친구끼리 커플로 같이 가는 경우도 많고 커플들은 당연히 남자친구나 여자친구와 파티에 같이 가는데 춤 출때 보면 진짜 커플들은 키스하고 껴 안고 난리가 나요.

교장선생님과 선생님들이 있는데도 말이죠!


파티에서 신나게 놀고 새벽 한시가 다 되서야 집에 돌아왔던 걸로 기억해요.


당연히 남자가 여자를 집까지 대려다 줘야 해요!


신데렐라가 된 기분으로 처음 드레스 입고 갔던 파티여서 너무 재미있었고, 하루 종일 저를 공주처럼 대우 해 준 카너한테 너무 고마웠어요!



윈터포멀이 남자가 여자한테 물어보는 파티였다면, 새디 호킨스 댄스는 반대로 여자가 남자에게 물어보는 파티였어요.


나름 소심한 저는 제 친구들에게 "카너와 파티에 같이 가고 싶은데 카너가 싫다고 하면 어떡해?" 라고 물어봤었는데, 제 고민을 들은 라티샤가 저 대신 카너를 위한 쿠키를 만들어 줬어요.



"나랑 새디 호킨스 파티에 같이 갈래?:)"

라티샤가 저에게 제가 직접 만든 쿠키라고 하고 카너에게 쿠키를 주면서 물어보라고 해서 친구들이랑 작전을 짜고 카너에게 점심시간에 파티에 같이 가자고 물어봤어요!

카너가 감동받고 같이 가자고 해서 새디호킨스 파티에도 카너랑 같이 가게 되었답니다.

카너는 아직도 이 쿠키가 제가 만든 쿠키로 알고 있지 라티샤가 만든 쿠키인지 몰라요ㅎㅎ



흰 티를 맞춰 입고 갔었던 새디 호킨스 파티.

윈터포멀처럼 큰 파티는 아니였지만 너무 재미었어요!


대부분의 학교와 마찬가지로 졸업파티인 프롬파티는 여자는 학년에 관계없이 남학생에게 초대를 받으면 갈수 있지만 남학생은 11학년, 12학년 학생만 갈 수 있습니다.


10학년이였던 카너와 저는 아쉽게도 프롬파티에 같이 갈 수 없었지요.



그래서 12학년인 제 미국 친구 리니앤이 본인은 카너를 초대하고, 리니앤의 남자친구가 저를 초대해서 파티에 갈 수 있게 해 준다고 했었는데, 누가봐도 이상한 그림이라 거절했었어요.  


프롬파티에 갔다면 여러분들께 프롬파티에 대해 자세히 얘기 해기 해 드릴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아쉽네요!


프롬파티는 미국 학교의 파티 중 가장 큰 파티인데요, 큰 파티이다 보니 비싼 드레스나 구두를 살 뿐만 아니라 친구들끼리 모여 리무진을 빌리거나 버스를 빌리는 경우도 있답니다.


학교에서 주최하는 프롬 파티의 경우 여느 파티와 마찬가지로 술이 없고 선생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안전하지만, 친구들끼리 장소를 빌려 노는 에프터 파티라고 하는 프롬 뒷풀이 파티에서는 별 일이 다 일어난답니다.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학생들이 많다보니 교통사고도 흔히 일어나고, 이 날 하룻밤의 실수로 부모가 되어 버리는 학생들도 있지요.


이때 만들어진 아기를 가리켜 Prom baby (프롬 베이비) 라고 해요.


마지막으로 한가지 덧 붙이자면, 파티 갈 때 입었던 드레스는 두 번 다시 입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중고로 사는 경우도 있고 친구끼리 빌려주는 경우도 있는데요, 페이스북 페이지를 찾다보면 지역별로 드레스를 사고 파는 페이지가 있으니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오시거나 유학오시는 분들은 참고하세요.


중고 드레스지만 그 드레스도 한 번 밖에 안 입은 드레스라 새거나 마찬가지거든요.


미국 고등학교의 파티문화, 신기하고 재미있지요?


한국에서는 경험 할 수 없는 소중하고 뜻깊은 경험이었고, 미국 문화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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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학기가 끝나고 5월학기를 기다리며 잠깐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 요즘은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한 학기 동안 잠도 못 자고 열심히 달려왔으니 그 동안 못 잤던 잠도 실컷 자고 맛있는 음식도 해 먹으며 빡빡한 3주짜리 5월학기를 어떻게 버틸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지요.

 

오늘은(52-예약 포스팅입니다^^) 제 중국인 룸메이트 페이의 친구들이 저와 페이의 기숙사로 놀러 와 같이 쿠키를 만드는데 페이가 저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스텔라, 너는 백인이 되고 싶지 않아?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꼭 백인으로 태어나고 싶어!"

 

백인이 되고싶냐는 페이의 질문에 저의 대답은 "Yes" 였을까요?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처음 왔던 만 15살의 저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웠습니다.

 

평생을 저와 같은 피부색과 눈동자 색, 그리고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저와 비슷하게 생긴 친구들과 어울리고 같이 공부하다가 미국 고등학교에 오니, 저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미국 친구들이 외계인처럼 느껴졌고 처음엔 그런 미국친구들에게 말 걸기도 무서웠었지요!

 

제가 다녔던 미국 공립 고등학교는 백인 비율이 이상할 정도로 높은 학교였습니다.

 

미국의 인구는  77% 백인, 13% 흑인, 그리고 10%의 타 인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의 경우 약 600명의 학생 중 95%이상이 백인 학생이었고 하얀 피부에 검은 머리를 가진 동양인은 저 혼자, 그리고 흑인 선생님은 단 한 분도 없었습니다.

 

미국에 처음 와서 모든 것이 신기하던 미국 생활 초기에 미국 친구들과 다른 피부색, 금발 또는 갈색 머리 사이에서 유난히도 튀는 검은 머리를 가진 제 자신이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진한 갈색 눈동자를 가진 저에게 눈동자 색깔 때문에 동공이 보이지 않는다는 미국 친구들의 말은 제 기분을 상하게 하기도 했었지요.

 

파란 눈, 초록 눈, 회색 눈을 가진 제 미국 친구들은 멀리서 봐도 동공이 뚜렷이 보였었는데, 제 눈에는 친구들의 뚜렷한 동공 마저도 부러웠고 예뻐 보였었습니다.


인종차별을 크게 당해 본 적이 없었음에도 "나는 왜 백인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체구도 작고 미국에서는 흑인보다 아래라는 동양인으로 태어났을까?"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남들과 다른 내 모습이 싫었고 제 미국 친구들처럼 저도 백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생활에 적응 해 가고 미국이라는 크고 거대한 나라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언젠가 부터 저도 모르게 제 생각은 바뀌어 갔습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다양한 언어를 쓰는 다양한 인종이 함께 어우러져있는 거대한 미국을 Melting pot (멜팅 팟 - 인종, 문화, 민족의 용광로) 이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해,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미국은 "백인"만을 위한 나라가 아닌 세계 각 국에서 온 다양한 문화를 가진 이민자들 한 명, 한 명을 위한 나라 인 것이지요.


금발 머리카락에 파란 눈동자를 가진 백인여자가 미국의 Sex Symbol (성적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양한 피부 색을 가진 다양한 인종이 모여사는 미국에서는 사람들마다 미의 기준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특별한 미의 기준이 없을 뿐더러, 미국에 살면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계속 만나다 보니 모든 인종은 다 아름답고 각각의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백인 위주의 영화를 보고,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동요되어 평생을 살면서 저도 모르게 가지게 되었던 "백인은 타 인종보다 우월하다." 라는 생각이 미국에 와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마침내 깨어지게 된 것이지요.


다양한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로 인해 세워진 미국에 백인들만 있다면 미국을 진짜 미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피부 색이 어떻든, 종교가 어떻든, 어떤 문화를 가지고 살고 있는지에 상관없이 나와 다른 그 사람 또한 아름답고 존중받아야 하며, "다른 것" 은 "틀린 것"이 아님을 말이죠.


다름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나니 백인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제 모습이, 그래서 더 아름다운 제 자신이 좋아졌습니다.





미국 마트에서 파는 동양인, 히스패닉, 백인, 흑인 등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다양한 인종의 인형.


처음에는 백인들이 마냥 부러웠지만 동양인인 제 자신을 사랑하고 남들과 다른 피부색을 특별하다고 받아드리고 나니 행복하고 마음이 편합니다.


제 자신이 얼마나 아름답고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종종 듣게되는 사람들의 인종 차별적인 발언에도 기죽지 않고 오히려 "지금 당신이 한 말이 저를 불편하게 하네요." 라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게 되었지요.


또한, 저도 저와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진 사람들,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고 이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들이 예상 하신 대로, 백인이 되고 싶냐는 페이의 질문에 대한 답은 No 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인종차별은 미국에 여전히 흔합니다.


보통 겉으로 티는 안 내지만 여전히 백인 우월 주의가 백인들의 마음속에 남아있기도 하고, 무의식중에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다른 것은 그저 다른 것 일뿐, 틀린 것이 아님을 깨닫고 인종과 문화, 그리고 종교에 상관없이 각각의 사람들이 지닌 다름의 가치를 알고 다름을 존중 할 줄 아는 성숙한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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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가 지난 세 학기보다 유난히 힘들었던 이유는 두 개의 해부생리학 수업 (해부생리학 1, 해부생리학 2)때문이였습니다.

 

하나만 들어도 힘들다는 해부생리학 수업을 한 학기에 두 개를, 게다가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공부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미국 학생들도 어려워하는 과목이여서 같은 반 친구들 중에는 같은 수업을 3번째 듣는 친구도 있었고, 점수가 다 나온 지금, 재수강을 해야 하는 친구들도 많지요.

 

해부생리학 1 과 해부생리학 2를 각자 다른 교수님께서 가르치셨는데, 두 분의 수업 스타일은 180도 달랐습니다.

 

, 근육, 신경 등 전반적인 해부학에 대해 배웠던 해부생리학 1의 남자 교수님이신 L교수님의 수업은, 1시간 15분 수업인데도 불고하고 보통 짧게는 30, 길게는 50분 안에 끝났습니다.

 

하루에 반 챕터, 혹은 한 챕터의 진도를 나가며 보통 50장 내외의 파워포인트를 한 수업시간에 배웠는데, 빽빽한 파워포인트를 한번 읽어주고 강의가 끝나다 보니 수업이 제 시간에 끝날 일이 없었고, 어려운 내용임에도 잘 설명 해 주시지 않으니 이해는 학생들의 몫이었지요.

 

학기가 시작 하기 전, 그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의 말 대로 L교수님의 수업은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인 별 필요 없는 수업이었습니다.

 

저는 몸이 안 좋았던 날 하루만 빼고 다 출석 했지만, 교수님의 수업 스타일 때문에 학생들의 출석률은 항상 저조했지요.

 

반면에 감각기관, 순환계, 호흡계, 비뇨계 등 생리학을 주로 다뤘던 해부생리학 2를 가르쳤던 여자 교수님인 J교수님은 수업시간에 지루할 틈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단 한번도 5분 이상 일찍 끝난 적 없는 이 수업은 교수님이 항상 재미있게 설명 해 주셨고, 앞서 글에서 이야기했듯 왜 맥주를 많이 마시고 나면 물을 많이 마셨을 때 보다 화장실에 더 자주 가고 싶은지, 과 호흡 환자가 발생 했을 경우 왜 비닐봉지에 대고 숨을 쉬게 해야 하는지, 피임약이 어떤 원리로 피임이 되게 하는지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시를 가지고 토론하고 원리에 대해 설명을 듣다 보니 배움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절실히 깨닫게 된 수업이었습니다.

 

강의에서 뼈의 역할, 신경이 전해지는 과정, 근육이 움직이는 과정, 생리학의 원리를 배웠다면 월요일마다 있었던 Lab(실험실)수업은 뼈의 이름, 근육의 이름, 신경계의 이름, 몸 속 모든 장기뿐만 아니라 장기의 부분과 뼈의 부분 하나하나의 스펠링까지 모두 외워야 했던 잔인한 수업이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10시엔 해부생리학 2 Lab수업을, 2시에는 해부생리학 1 Lab 수업을 가야 했었지요.

 

강의 시험은 보통 우리가 알고있는 시험처럼 자리에 앉아서 종이와 OMR카드 (미국에서는 Scantron sheet 또는 Answer sheet 이라고 불러요.)로 시험을 보거나, 서술형 시험의 경우 시험지에 답을 직접 적어서 내지만, Lab 시험은 다릅니다.


실험실에 6명 씩 한 줄로 나란히 앉을 수 있는 긴 책상 5줄이 있고 시험 볼때는 자리마다 칸막이를 설치 해 두는데, 각 자리마다 뼈 모형, 인체모형, 근육 모형, 고양이 시체가 한 두개씩 올려져 있답니다.


예를 들어 허벅지 뼈 모형이 있다면, 왼쪽 뼈인지 오른쪽 뼈인지, 뼈 이름은 무엇인지, 뼈 모형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보고 그 위치의 이름은 무엇인지 답안지 한칸(=한 문제)에 세개 답을 스펠링까지 맞게 적어야 하지요.


교수님의 지도에 따라 일정 시간 (약 1분)마다 옆자리로 옮겨 다음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50문제를 풀고 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랩 시험을 위해 공부해야 했던 팔뼈와 근육 목록.



저는 같은 과목을 듣는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보다 혼자 공부하는 스타일이라 지금까지 항상 혼자 공부 해 왔는데, 낙제가 많은 해부생리학 과목 특성상 그룹 스터디는 필수였습니다.


특히나 해부생리학 1의 경우 강의시간에 배우는게 없다보니 이해를 못 하는 부분이 있으면 이해를 한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 해 설명을 들어야 했었고, 저 또한 근육이 움직이는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이민자 출신 친구인 니콜라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아야 했었답니다.


Lab 시험이 있을 때면 시험 며칠 전 날 부터 학교 실험실에 짐을 싸들고 가서 친구들과 새벽까지 공부하곤 했었습니다.


외워야 될 양이 너무 많아서 혼자 공부하다보면 지치고, 시험은 인체 모형으로 봐야 해서 시험 며칠 전 부턴 학교 실험실에 친구들이 많았는데, 같이 근육 모형을 보면서 근육이름을 외우고, 해부했던 고양이를 냉장고에서 꺼내 혈관, 근육, 장기들의 이름을 같이 외우고 시험보고, 헷갈려 하는 친구가 있으면 서로 잘 도와주었습니다.


해부생리학 2보다 훨씬 어려웠던 해부생리학 1은 특히나 공부 할 때 친구들이 꼭 필요했는데, 시간을 정해놓고 "한 시간 후에 팔 뼈 (humerus, ulna, radius), 와 손 뼈를 부분들까지 모두 외워 시험보자!" 며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어려운 시험들을 잘 해쳐나갔지요.



새벽 세시 반까지 실험실에서 뼈 이름을 외웠던 날.


해부생리학 1 수업은, 기말고사 당일까지도 우리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기말고사 전 날, 친구들과 학교 도서관 일층에 있는 스터디룸을 빌려서 하루종일 같이 공부했고, 기말고사 시험 전에는 제가 한국어로 기도 해 줘야 시험을 잘 보는 징크스가 있어서 기도 해 달라는 친구들의 요청에 제가 대표 기도를 해 주었지요.


(예전에 시험 보기 전 친구들의 요청으로 친구들과 손을 잡고 한국어로 기도 해 준 적이 있는데, 우연히 같이 기도했던 친구들 모두 시험을 다 잘봐서 기독교가 아닌 니콜라스까지도 제 기도를 원하게 되었어요ㅎㅎ)


어려웠던 기말고사를 잘 끝내고 강의실을 나오며 뒤를 돌아 아직 시험을 보고 있는 제 친구들을 문밖에서 바라보니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힘들었던 수업을 잘 끝냈다는 안도감에, 한 학기를 서로 힘을 합쳐 잘 버텨냈다는 것에,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에, 힘들었지만 좋은 친구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그리울 것 같다는 생각에 떠져나오는 눈물을 꾹 참아야 했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 중 낙제한 친구들도 많지만, 저와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 대부분은 좋은 성적을 계속 받았었는데, 서로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대견함에 가슴이 벅차기도 했고요.


이 고마운 친구들과 한 학기를 보내며 해부생리학 보다 더 큰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치열한 상대평가여서인지 한국 학교에서는 서로를 도와주는 일이 잘 없었는데, 같이 해부생리학을 공부했던 스터디 그룹 내의 친구들은 서로를 진심으로 도와줬고, 누군가가 이해를 못 하고 있으면 이해 할 때 까지 설명 해 주었습니다.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평생 갖고 살던 저는, 해부생리학 수업을 통해 서로 힘을 합하면 더 큰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 협동심을 발휘하면 못 이루어 낼 것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고, 한 학기동안 좋은 친구들과 함께 공부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늘 낮에, 다음학기부터  플로리다주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게 되서 이제는 같이 공부 할 수 없을 니콜라스를 배웅하고 왔습니다.


니콜라스가 제가 겨울 방학때마다 미시간에 간다고 아버지께 말 했는지, 니콜라스 아버지는 저를 보시더니 방학때 미시간에 가지말고 플로리다에 놀러오라고 하셨고 우리를 위해 같이 사진도 찍어 주셨습니다.


해부생리학 뿐만 아니라 니콜라스와 거의 매일 밤 도서관의 같은 테이블에 앉아 공부 하곤 했었는데 그 시간들이 벌써부터 그립습니다.


다음학기도 이번학기에 얻은 큰 깨달음을 가지고 친구들과 함께 어려운 수업들을 또 잘 버텨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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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이야기 2017/03/27 -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을 통해 내가 얻은 것 에 이어 다음 포스팅으로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을 통해 제가 잃게 된 것에 대해 써 보려고 했었는데, 며칠 전 제 미국 친구 다이애나가 저에게 한 어떤 제스쳐 때문에 이 주제가 갑자기 생각 났습니다.


다이애나의 제스쳐를 보자마자 문득 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으로 미국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미국 문화와 미국의 제스쳐를 잘 몰라 미국 친구들을 오해하게 되었었던 일화가 생각났지요.


2012년 9월, 미국 교환학생으로 막 미국에 와서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미국친구들이 서로에게 자주 했던 제스쳐 중 제 눈에 띄였던 제스쳐가 있었습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이미지)


지금은 저도 잘 쓰는 이 제스쳐, 무슨 뜻 인지 한번 맞춰보세요!


미국 문화에 대해 무지하던 미국 생활 초기, 시험을 앞두고 떨린다는 저에게 제 미국 친구는"I'll keep my fingers crossed! (내가 손가락을 꼬아 줄게!)" 라며 저에게 이 제스쳐를 했습니다.


F로 시작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손가락 욕과 닮아서, 지금 저 친구가 나에게 욕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고, 그 의미를 알고 싶어 그 친구에게 그게 무슨 뜻 인지 조금 공격적으로 물어봤었지요.


그로부터 거의 5년이 지난 며칠 전에는, 해부학 네번 째 시험이 있었습니다.


해부학은 낙제도 많고 어려워서 다들 부담스러워하는 과목인데, 시험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저는 미국 친구들과 긴장도 풀겸 수다도 떨고, 시험을 잘 보라며 서로를 격려 해 주고 있었습니다.


저보다 앞자리에 앉는 다이애나가 뒤를 돌아 저를 부르더"Hey Stella! Good luck on your test! (스텔라! 시험 잘 봐!)" 라며 양손으로 위의 제스쳐를 저에게 하더라고요.


오늘 주제를 생각나게 해 준 다이애나의 이 제스쳐, 무슨 의미인지 눈치 채셨나요?


바로 "행운을 빌어!" 라는 뜻이랍니다!


직접 사진처럼 손가락을 꼬지 않고도 말로만 "I'll keep my fingers crossed for you! (내가 너를 위해 손가락을 꼬아 줄게!)" 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미국인들과 어울리다 보면 자주 들을 수 있는 표현과 자주 볼 수 있는 제스쳐이니 미국 친구가 있다면 한 번 써 보는 것도 좋겠지요?


두번째로 소개하려고 하는 제스쳐는 제가 저의 가장 친한 미국 친구 카너를 인종차별주의자로 오해하게 했던 제스쳐예요.


지금이야 카너가 저를 잘 도와주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있어서 조금 인종차별적인 농담을 해도 진심이 아님을 알고 웃어넘기지만, 카너를 막 알게 됐었던 교환학생 시절 초기에는 카너 또한 저에게 낯선 미국인 중 한명에 불과했었지요.


점심시간에 테이블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던 카너는 제 이름을 부르며 이리 와 보라고 손짓을 하더라고요.


 (출처: 구글 이미지)


바로 이렇게요!


카너의 이 제스쳐를 본 순간 기분이 나빠 머리속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내가 자기네 집 개인가?"

"쟤 인종차별주의자야? 나한테 왜저래?"


저도 할 말은 하고 사는 성격인지라 카너한테 가서 한마디 했었지요.


"너 그 제스쳐 뭐야? 기분나쁘니까 나한테 하지마."


그러자 카너가 오히려 저에게 이 제스쳐가 왜 기분이 나쁘냐고 물어봐서 제가 그 제스쳐는 애완동물한테나 하는 제스쳐인데 기분나쁜게 당연한거 아니냐고 되물었더니 카너는 제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거 다른사람도 다 쓰는 제스쳐인데 뭐가 문제냐고 하더라고요.


알고보니 미국에서는 정말 누구를 부를 때 이 제스쳐를 사용해요.


 (출처: 구글이미지)


사진처럼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는 한국식 "이리 와" 제스쳐만 보다가 미국식 "이리 와" 제스쳐를 보니 무례 해 보이기도 하고 문화적 차이가 재미있지요?


카너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카너가 이 제스쳐를 엄마에게도 하는 것을 봤는데 물어보니 정말 아무에게나 사용 해도 되는 제스쳐래요.


얼마 전 제가 다니는 미국 대학교의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기독교 모임에 갔는데 모임을 주도하는 미국 친구가 손바닥이 위로 향하는 미국식 "이리 와" 제스쳐를 하길래 같이 밥을 먹다 한국식 "이리 와" 제스쳐를 소개 해 주며 문화적 차이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제 이야기를 들은 다른 미국 친구들과 목사님도 재미있어하며 다른 한국인들이나 동양인들을 만나면 무례 해 보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식 제스쳐와 다른 미국식 제스쳐 때문에 카너를 오해하게 된 일이 있고 난 이후에 카너는 저에게 한국식 "이리 와" 제스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제는 미국식 "이리 와" 제스쳐를 잘 알고 있고 더 이상 기분나쁘지 않다고 해도 말이죠!


미국의 제스쳐와 한국식과 미국식 제스쳐의 차이점, 신기하고 재미있지요?


미국에 오실 일이 있으시다면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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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한국 음식의 맛과 식감이 어색 할 만도 한데, 고맙게도 제 호스트맘과 카너는 한국음식을 아무 거리낌 없이 맛있게 먹어줬습니다.


라면, 짜파게티, 볶음밥, 김치 등의 한국 음식 중에서도 호스트맘과 카너는 특히 떡국떡을 넣은 떡라면을 무척이나 좋아 했었는데요, 그래서 2012년 9월부터 2013년 6월까지 미시간주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 부터 호스트맘과 카너를 위해 떡국을 꼭 한번 끓여주고 싶었답니다.


당시, 요리엔 소질이 없던 저 였던지라 떡국을 끓여서 같이 먹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뿐, 용기가 안 나서 막상 떡국을 끓이진 못했습니다.


2년 반 만에 미시간으로 돌아갔던 이번 겨울, 조지아주로 돌아오기 전날의 마지막 저녁에 몇 년동안 생각만 해 왔던 떡국을 드디어 호스트맘과 카너를 위해 끓였습니다.


카너와 영화를 보기 위해 큰 도시에 갔을 때 떡국떡을 사 왔었는데, 떡국을 한 번도 직접 끓여본 적이 없는 저는 떡도 있겠다 큰 용기를 냈습니다.


네이버에서 레시피를 찾아보니 국간장이 필요하다고 해서 국간장이 없어 걱정하고 있던 저는 엄마한테 레시피를 물어봤습니다.

 


레시피라고 하기도 뭐한 엄마의 간단한 떡국끓이는 법.


조지아주로 돌아오기 하루 전날이였던 1월 9일, 할머니(호스트맘의 어머니)께 작별인사를 하고 떡을 제외한 떡국에 필요한 재료를 사서 집에 돌아와 요리 블로그의 떡국 레시피를 보며 떡국을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물은 얼만큼 넣어야 되는지, 재료들은 얼만큼 넣어야 되는지 전혀 몰라서 넣고 싶은 만큼 제 마음대로 넣었습니다.


항상 엄마가 끓여주신 떡국을 먹어보기만 했지 제 스스로 끓여보는 떡국인지라 헤매며 당황 해 하고 있으니 호스트맘께서는 니가 어떻게 끓여도 우리는 진짜 떡국이 어떤 맛인지 몰라 맛있게 먹을거라며 저를 격려 해 주셨습니다. 


물에 소고기와 파(마트에 대파는 없어서 대파보다 작은 Green Onion을 사용했습니다.)의 흰 부분을 넣고 국물을 내기 위해 한참을 끓인 뒤, 계란을 풀고 소금으로 간을 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떡국 국물은 흰색이였는데 흰색이 안나와서 걱정하던 찰나, 떡을 넣고 끓였더니 다행히도 흰색의 국물이 나왔습니다.


사진이라 냄비의 크기와 떡국의 양이 느껴지지 않지만, 꽤 큰 냄비에 엄청난 양의 떡국을 끓였습니다.


제가 떡국을 끓이고 있던 사이, 호스트맘께서는 테이블을 세팅 해 주셨습니다.



내일이면 다시 조지아주로 떠나는 저를 위해 미시간주에서 맞는 마지막 저녁이라고 예쁜 와인잔도 꺼내주시고, 사진엔 없지만 무알콜 샴페인과 스테이크도 준비 해 주셨습니다.


약속 한 시간에 카너가 저녁을 먹으러 왔고, 우리는 마지막 저녁으로 떡국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재료를 구하기 힘든 미국에서 있는 재료로만 대충 끓여서 맛이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생김새도, 맛도 엄마가 끓여주신 떡국과 비슷했습니다.


돼지와 소가 불쌍하다고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잘 먹지 않는 카너도 이날만큼은 소고기가 들어간 떡국과 소고기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저녁을 다 먹고 나서 위가 약해 매운 음식은 못드시는 호스트맘은 저에게 남은 김치를 카너에게 주는게 어떻겠냐고 물어보셔서 저는 기꺼이 주겠다고 했고, 너무 많이 끓여서 배부르게 먹었는데도 많이 남아 있던 떡국과 함께 카너에게 싸 주었습니다.


카너와 호스트맘의 집에서 잠깐 놀다가 카너의 부모님께 작별 인사를 드리러 카너와 함께 카너 집으로 갔습니다.


김치를 먹어보라는 카너의 성화에 카너의 부모님은 김치를 드셔 보셨고, 김치가 맵다는 카너의 엄마 메리와는 다르게 김치를 먹어 본 적 있다는 카너의 아버지 브라이언은 김치를 꽤 좋아하셨습니다.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시는 카너의 부모님께서는 내일이면 제가 다시 조지아주로 돌아간다고 하니 무척이나 아쉬워 하셨습니다.



카너네 새 식구가 된 아기 고양이를 안고 사진도 찍고, 카너의 엄마 메리, 카너의 아빠 브라이언과 꼭 안으며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카너가 저를 다시 호스트맘의 집으로 대려다 주는 길, 카너의 차 안에서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아쉬워 하며 우리는 또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호스트맘의 집 마당에 차를 세우고, 비가 오는데도 차에서 내려 서로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내일이면 저도 카너도 이곳을 떠나 각자의 학교로 돌아가는데, 새 학기에도 학교생활 잘 하자고 서로를 응하며 항상 적응되지 않는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멀리 한국에 가는 것도 아닌데도 또다시 한참 떨어져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니 슬펐습니다.


학교에 돌아와서 정신없는 새학기 첫날을 마무리 하고 있던 저녁, 브라이언으로부터 페이스북 메세지가 왔습니다.


제가 교환학생이였을 때 부터 가끔 잘 지내냐며 따뜻한 메세지를 보내주시는 분 이십니다. 


"안녕 스텔라! 학교로 잘 돌아갔길 바라. 너를 다시 보게 되어 정말 좋았어! 우리를 방문 해 줘서 고마워! 김치를 준 것에 대해서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메리가 만든 양배추 스프랑 같이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어! 학교 생활 잘 하길 바라고 계속 연락하자. 우리는 너를 사랑해!"


학교에 잘 돌아와서 정신없이 둘째 날을 보내고 있고, 김치를 좋아해서 나도 기분이 좋다며 벌써부터 보고싶다고 답장을 했더니 또다시 메세지가 왔습니다. 

"우리도 니가 보고싶어. 나는 김치를 진짜 좋아하고, 떡국도 맛있었어. 나는 한국음식 먹는것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 거기서 재미있게 잘 지내!"


카너의 부모님도 김치와 떡국을 맛있게 드셨다고 하니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동양인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한국음식을 알린 것 같아 자랑스러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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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저에게 인생 최고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미국 고등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낸 한 순간 한 순간이 모두 인생 최고의 순간이였다고 대답 할 것 입니다.


그만큼 저는 미국 교환학생 10개월 동안 정말 소중한 추억을 많이 만들었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며, 한국에 돌아와서는 항상 미국 고등학교 생활을 그리워했었습니다.


2년만에 미국에 돌아와 미국 대학교에서 다시 유학을 시작하고 크리스마스 방학을 미시간에서 보내는 것이 확정되었을 때, 꿈에서만 갈 수 있었던 학교를 곧 갈 수 있고, 꿈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고 들 떠 있었습니다.


미시간에서 보낸 한 달 동안 두 번의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보고 선생님들을 뵙기 위해 여러번 학교에 다녀 왔습니다.


두번의 크리스마스 콘서트 중 한 번은 제가 교환학생 때 속해 있었던 고등학교 합창단의 공연이였습니다.


고등학교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콘서트가 있던 날 저녁, 같은 합창단이였던 조이가 여자친구와 함께 저를 데리러 왔습니다. 


당시에 저는 10학년이였고, 조이는 11학년이였는데, 벌써 대학교 2학년이 된 조이를 보니 신기했습니다.


2년 반 만에 만난 우리는, 학교 마지막날과 저의 작별파티에서 같이 울었던 것을 떠올리며 웃기도하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콘서트가 시작하기 전에 합창단 교실로 가서 제가 교환학생이던 당시 9학년였지만 지금은 12학년 졸업반이 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저와 같은학년이였거나 윗 학년이였던 친구들은 모두 졸업을 해서 합창단에는 아는 얼굴이 별로 없었습니다.


저를 가르치셨던 합창단 선생님 마저 2014년 5월을 끝으로 은퇴하셔서 항상 편하고 재미있었던 합창단 교실이 처음 와 본 곳처럼 매우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제 카운슬러 선생님께서 합창단 선생님이 되셨는데도 말이죠!



합창단 단원으로서 항상 무대에만 서다가 객석에서 콘서트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합창단 콘서트가 끝나고 12학년 합창단원인 브랜든(좌), 그리고 같은 합창단원이였던 조이(우)와 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지금은 합창단 선생님이 되신 제 카운슬러 선생님이셨던 Mrs. Proulx.



저를 보자마자 알아보시고 안아주시며 반가워 해 주신 교장선생님.



오랜만에 합창 단원이였던 친구들과 만났습니다!


당시 12학년이였던 태미, 11학년이였던 조이, 그리고 10학년이였던 저까지 우리는 모두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조지아주로 돌아오기 며칠 전, 선생님들께 조지아주로 다시 돌아간다고 인사를 드리고 같이 사진을 찍기 위해 호스트맘과 같이 마지막으로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소복히 쌓인 하얀 눈에 햇빛이 반사 되어서 눈이 부십니다.




호스트맘께서 매일 아침마다 저를 내려 줬던 학교 옆, 선생님 주차장에 호스트맘의 차를 주차하고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정문으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학교 로비.

친구들과 맛있게 점심을 먹으며 재미있는 추억을 많이 많들었던 곳 입니다.



위아래가 뻥 뚫려 있어 저에게 충격을 주었던 화장실.


2015/07/28 - 나를 놀라게 한 미국 학교의 화장실





미술 교실 앞의 게시판.



친한 친구들과 함께 앉아 즐겁게 그림을 그렸던 미술 교실.

2년 반 만에 만난 미술 선생님은 여전히 따뜻하게 저를 반겨주셨습니다.



미술 교실 앞의 게시판.



3년전, 친구들과 이곳을 함께 꾸몄던 기억이 났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다 떠나 텅 빈 학교의 메인 복도.


스쿨버스를 타지 않았던 저와 카너는 친구들이 이미 떠나고 없는 텅 빈 복도를 같이 걸어나오곤 했었는데 그때가 참 그립습니다.



학교의 메인 복도.



수학 선생님과 함께.


수학 선생님을 만나러 수학 교실에 가니 수업이 끝나기 바로 전이여서 교실에 학생들이 많았는데 동양인인 저를 보고 누구냐며 반갑게 인사 해 주었습니다.


올 해에는 교환학생이 몇명 안 온데다가 동양인 교환학생은 한 명도 없어서 이 학교에 동양인은 한 명도 없다는데, 그래서인지 동양인인 제가 신기했나봅니다.



한때는 제가 사용했지만 지금은 다른 누군가가 쓰고 있을 락커. 


한동안 저를 엄청 괴롭혔던 락커입니다.


2014/08/01 - 미국 학교에서 날 괴롭혔던 이것 때문에 쉬는시간마다 두려웠어요.


오랜만에 제가 쓰던 락커 앞에 서서 자물쇠를 돌려보니 낯선 미국 학교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시기, 매일 아침마다 자물쇠를 열며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짐하고 기도했던 만 15살의 제가 생각이 나서 울컥 했습니다.


동양인이라고는 저밖에 없는 낯선 이 곳에 처음 왔을 때, 오늘 하루도 별 일 없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또 바랐었는데, 2년 반만에 다시 돌아온 저를 보자마자 달려와서 안아주고 반가워해주는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보니 저 적응 잘 하고 잘 지냈던 것 같습니다^^



추억이 곳곳에 남아있는 학교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학교 정문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는 그 동안 변한게 참 많은데, 오랜만에 돌아온 학교는 변한 것 하나 없이 그대로였습니다.


학교 특유의 냄새도, 제가 쓰던 락커와 교실들도 변한 것 없이 다 똑같았는데, 친구들 대부분이 졸업을 했고 그 자리를 낯선 얼굴들이 채우고 있다는게 조금 슬펐습니다.


한국 학교 선생님들은 의무적으로 몇 년에 한번 씩 학교를 옮겨야 하지만 미국 학교 선생님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한 학교에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은퇴 할 때까지 있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였습니다.


제가 존경했던 합창단 선생님과 1학기 영어 선생님, 그리고 생물 선생님은 은퇴하셔서 만날 수 없었지만, 세 분을 제외 하고 저를 가르쳐주셨던 모든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거든요.


이 학교를 떠날 때 친구들과 끌어안고 펑펑 울면서 언제쯤 이 곳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싶었는데,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미국에 돌아오기로 결정하고, 미국 대학교 학생이 되어 꿈을 키우고 목표를 갖게 한 미국 고등학교에 돌아오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학교를 둘러보며 소중한 추억들을 만났고 15살의 철없던 시절의 저를 만났습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그때로 돌아 갈 수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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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9~2013.6 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 2016.1~2019.5 미국 간호대학 간호학사 졸업/ 미국병원 외과병동 신규간호사 Stella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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