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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마트에서 미국 경찰아저씨께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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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는 작년 11월에 있었던 이야기예요.

 

4년 만에 처음으로 작년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약 3주간 한국에 가족들과 친구들을 보러 다녀왔습니다.

 

미국에 있으면서 인터넷으로만 보던 마라탕을 작년 한국에 갔을 때 처음 먹어봤는데, 한 입 먹어보니 왜 마라탕 열풍이 갑자기 시작되었는지 이해가 바로 되더라고요.

 

애틀란타 한인타운에 있을 건 다 있지만 그래도 제가 나고 자란 한국에 오랜만에 갔으니 어린 시절 자주 갔던 식당, 친구들과 자주 가던 분식집, 그리고 엄마가 해주신 그리웠던 집밥을 먹느라 마라탕을 두 번밖에 먹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에 오자마자 마라탕에 한이 맺혀서 마라탕을 파는 식당이 있나 찾아보고, 한국식당 중에 마라탕을 파는 곳이 있길래 미국에 온 지 이틀 만에 한인타운에 가서 마라탕을 포장해 왔었죠.

한국처럼 먹고 싶은 재료를 골라 담아 식당에서 끓여주는 방식이 아니고 마라탕을 시키면 식당의 레시피대로 알아서 끓여서 가져다주는 방식이었는데, 포장해 온 마라탕을 집에 와서 열어보니 먹을 것도 없고 마라탕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이 만들었을 거라고 확신 할 수 있을 정도로 제가 한국에서 먹어본 마라탕이랑은 정말 달랐어요.

 

한번 먹고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 정체불명의 마라탕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했어요.

 

이때부터 저는 마라탕을 파는 곳이 있나 한국식당, 중국식당까지 다 검색해 봤는데, 애틀란타 근처엔 한국식의 마라탕을 파는 곳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마라탕 대신 아쉬운 대로 찾아낸 것이 Hot pot(핫팟)이라고 부르는 중국의 훠궈였습니다.

 

지금은 제 약혼자가 된 당시 미국인 남자친구였던 알렉스와 일요일 저녁에 한인마트에서 장을 보고 그 근처에 있는 핫팟 음식점에 가기로 했어요.

 

둘이 어디를 갈 때 보통 알렉스 차를 타고 다니지만 이날은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제 차를 끌고 갔었는데, 비극은 이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핫팟을 먹으러 갈 생각에 너무 신났었던 저는 장 본 것들을 서둘러 트렁크에 넣고 트렁크를 닫았는데, 트렁크를 닫고 보니 신용카드와 신분증, 온갖 보험카드가 들어있는 카드지갑, 집열쇠, 차 키가 다 같이 묶여져 있는 제 열쇠고리가 안 보이는 거예요.

 

상황파악을 하기 전까지는 알렉스가 제 열쇠고리를 가지고 있는 줄 알았어요.

 

알렉스가 자기한테 제 열쇠고리가 없다는 소리에 "아, 장 본 것들을 트렁크에 넣으면서 내 열쇠고리까지 같이 넣고 트렁크 문을 닫아버렸구나." 바로 깨달았지요.

 

제 차는 차키에 트렁크 열림 버튼을 누르면 트렁크만 열리지 차 전체 잠금이 해제되지 않을뿐더러, 차키나 운전석에 있는 버튼으로만 트렁크를 열 수 있지 차 밖에서 수동으로 트렁크를 열 수 있는 방법은 없거든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일요일 밤, 집에서 차로 30분 떨어진 한인마트 주차장에서 제 차가 잠겨버린 거예요.

 

알렉스가 "너 집에 차키 하나 더 있잖아, 택시 타고 집에 가서 차키 가져오자."라고 했는데, 집 열쇠도 제 차 안에 있어서 집 집에 들어갈 수가 없잖아요?

 

오늘 밤 집에 가서 잠을 자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 차를 열어야만 됐어요.

 

핫팟이고 뭐고 이미 날은 어둡지, 날씨는 춥지 제정신이 아닌 상황에서 알렉스와 핸드폰으로 열쇠공을 찾아보고 있었어요.

 

대부분의 미국의 대형마트들은 밤이 되면 경찰분들이 마트 앞에 차를 세우고 마트를 지키는데, 그때 한인마트 앞에 주차돼 있던 경찰차를 보니 미국 대학시절 제 미국인 룸메이트의 말이 제 머릿속을 확 스치고 지나가더라고요.

 

"아까 월마트 주차장에서 내 차가 잠겨버려서 학교 경찰 (campus police-미국대학교 내의 교내경찰) 불렀었잖아. 학교 경찰 아저씨가 오셔서 차 문 열어주셨어."

 

미국 대학생활 시절 차 운전을 시작하면서 캠퍼스 내 혹은 학교 근처에서 차문이 잠기거나 배터리가 방전돼서 시동이 안 걸리는 경우 학교 경찰분께 전화하면 오셔서 도와주신다고 미국 친구들이 얘기해 줬었는데, 그때 미국 친구들이 해줬던 말들이 생각났던 거죠.

 

알렉스에게 "경찰분께 혹시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보자"라고 하니 알렉스는 경찰분들이 그런 개인적인 일까지 도와주실 거 같지는 않다고 하길래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최악의 대답은 No 밖에 더 있겠어? 가서 여쭤보기나 하자."라는 제 말에 결국 경찰분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여쭤보기로 했어요.

 

영어를 완벽하게 하는 미국에서 나고 자란 금발머리의 남자 알렉스가 도움을 요청하는 것보다 확실한 약자인 외국인 악센트+여자+동양인인 제가 도움을 요청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경찰차로 살금살금 다가가서 "실례합니다, 제가 실수로 열쇠고리를 넣고 트렁크를 닫아버려서 제 신분증, 신용카드, 차키, 집키 다 트렁크에 있는 상태로 차가 잠겨버렸어요. 혹시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여쭤봤어요.

 

거절당할 거라고 생각하고 여쭤봤는데 경찰분께서는 흔쾌히 "그럼요, 그런데 지금 저한테 차 문을 열 수 있는 도구가 없어요. 제 동료한테 전화해서 가져오라고 할게요. 전화번호 주시고 어디 들어가 계세요. 동료가 여기에 도착하면 전화드릴게요." 하시더라고요.

 

동료분이 오시길 기다리는 동안 한인마트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서 경찰분들께 드릴 커피와 브라우니를 사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20분쯤 지났을 때 동료 경찰분이 오셨고 차 문을 여는데 동의한다는 동의서에 싸인을 한 뒤 두 분께서 잠긴 제 차 문을 열어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저의 황당한 실수로 이 밤에 주차장에서 고생하고 계신 경찰 분들께 죄송해서 시켜만 주시면 저도 뭐든지 하겠다고 했더니 그럴 필요 없다며 차 안에 열림버튼이 어디에 있는지만 말해주면 된다고 하셨어요.

 

8시가 다 돼 가는 어두워진 한인마트 주차장에서 경찰아저씨 두 분이 손전등을 비추며 제 차를 여시고 계시니 다들 한 번씩 쳐다보시며 지나가셨답니다.

 

쌀쌀했던 11월의 일요일밤, 서비스가 한국에 비해 비싸고 모든 게 느린 미국땅에서 열쇠공을 부르자니 얼마나 기다려야 되는지, 얼마를 청구할지 정말 막막했는데 이 두 분 덕분에 제 미국생활 최대위기가 될뻔했던 이 상황을 순조롭게 해결할 수 있었답니다.

 

감사한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지만 작게나마 커피와 브라우니를 드렸는데 오히려 경찰분들께서 더 고마워하셨어요.

 

이분들 덕에 조금 늦었지만 제가 기대했던 핫팟도 먹으러 갈 수 있었고요.

고생끝에 먹어서 더 맛있었던 핫팟

 

한국에서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라고 불리고 쉽게 다가가서 도움을 요청 할 수 있는 이미지 이지만, 미국에서의 경찰에 대한 여론은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니랍니다.

 

총기 소유가 가능하고 공권력이 강한 미국에서 경찰 스스로가 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과잉대응을 하는 경우도 많고, 좋은 일로 경찰을 마주 할 일은 거의 없을뿐더러 경찰한테 절대복종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도로에 숨어있다가 교통법규를 조금이라도 어기면 바로 튀어나와 티켓을 끊어주며 벌금 고지서를 주는 것도 경찰이고요. 

 

이 일을 계기로 생각해 보니 10년 가까이 되는 미국생활동안 경찰분들께 받은 도움은 참 많았습니다.

 

미국 대학교에 막 입학을 해서 이른 아침 혼자 텅 빈 학교식당에서 아침을 먹다 갑자기 나온 눈물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제 옆에 앉아 말동무가 되어준 것도 경찰분이셨고, 다음날이 시험이라 날이 새도록 공부하다 화장실에 가려고 기숙사 방문을 여는데 문고리 고장으로 방 안에 갇혔을 때, 새벽 두시가 넘었던 그 시간에 오셔서 저를 꺼내주셨던 것도 경찰분이셨고, 비 오는 날 실수로 차 문을 안 닫고 내려서 차 속이 젖어가고 있을 때 제 차가 털린 줄 알았던 이웃의 신고로 출동하셨던 경찰분 덕에 제 차의 문을 늦지 않게 닫을 수 있었습니다.

 

2020.09.10 - 신고정신 투철한 미국인들 덕분에 집에 경찰이 찾아온 사연

 

신고정신 투철한 미국인들 덕분에 집에 경찰이 찾아온 사연

미국인들은 신고정신이 투철하다는 말, 들어보신적 있으신가요? 모든 경우와 사람을 일반화 할 순 없지만 한국인들이 "설마 아니겠지~" 라고 가뿐히 넘길 일도 미국인들은 "혹시 모르니까~" 라는

stelladiary.tistory.com

 

TV만 틀면 나오는 마음 아픈 사건 사고 소식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건가 싶지만, 그래도 이런 분들이 있어 세상은 아직도 따뜻하고 살만 한 것 같습니다.

 

경찰 분들께 받은 고마운 도움들 잊지 않고 저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살아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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