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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생활 중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고 느끼는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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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5살에 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처음 와서 1년을 보내고, 미국 대학 시절을 거져 미국 간호사가 되기까지 미국에 살고 있는 세월도 벌써 7년째 입니다.

 

미국에 처음 왔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제 인생의 4분의 1이상을 미국에서 보냈네요.

 

교환학생때부터 지금까지 저와 같은 국적의 한국인들보다는 미국인들과 주로 어울리고, 동양인이 거의 없는 미국병원에서 일을 하고, 미국인 남자친구를 사귀다보니 이제는 영어로 제 소개를 하고 대화 하는게 더이상 어색하지 않고, 미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보니 예의를 갖춰야 하는 이메일이나 편지를 쓸 때는 오히려 영어가 편하답니다.

 

7년간 미국에 살면서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 나라의 언어가 어느정도 되야 할 수 있다는 농담도 미국인들과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었지요.

 

많은 미국인들이 그렇듯 화장끼 하나 없는 얼굴로 레깅스 대충 챙겨 입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것도 이제는 일상이 되었고, 비가 좀 오더라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처럼 우산을 받지 않고 느긋하게 걸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미국친구들이 제 말투와 행동에 "Wow, you are so American!(너 완전 미국인 같아!)"라고 농담 하는 걸 보면 저도 이제 미국에 살만큼 살았다 싶다가도,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구나!" 라고 느끼는 순간들은 여전히 있습니다.

 

어느 순간에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시죠!?

 

바로 시작 할게요!

 

1.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는게 아직도 어색하다!

 

병원에서 일을 하다보면 환자 보호자분들의 이름, 제 환자들의 협진 의사의 이름, 담당 의사의 이름 등 하루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받아적을 일들이 생깁니다.

 

제 유니폼 주머니에는 항상 검정색, 파란색, 빨간색 세 자루의 볼펜이 들어 있는데, 전화로 누군가의 이름과 연락처를 받아 적을 때, 다른 간호사들로부터 리포트를 받을 때 등 아무리 급하고 바빠도 주머니에서 빨간색 볼펜을 꺼내면 다시 집어넣고 굳이 다른 색의 볼펜으로 사람들의 이름을 적습니다.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불운하다는 한국의 문화와는 다르게 미국에서는 이런 문화가 전혀 없기 때문에 미국인들 모두 아무렇지도 않게 빨간색 펜으로 이름을 쓰는데, 특히 장소가 병원이라 그런지 빨간색 펜으로 사람의 이름을 적는 것은 좀 꺼려지더라고요.

 

제가 누군가의 이름을 빨간색으로 적는 것도 불편하지만 반대로 누군가가 제 이름을 빨간색으로 적는 것도 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정작 제 이름을 빨간색으로 쓴 그 미국인은 한국의 이런 문화도 모르니 아무렇지 않지만 말이죠.

 

누군가의 이름을 절대 빨간색으로 적지 않고, 또 빨간색으로 적힌 이름을 보고 찝찝한 마음이 들 때마다 저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2. 아플 때는 무조건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한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워낙 밥을 좋아하지 않았어서 미국에 와서 음식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크게 없습니다.

 

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으로 처음 미국에 와서 지금은 저의 또다른 가족이 된 미국인 호스트맘과 같이 살았을 때 밥을 먹지 않아도 되서 저에게는 완전 천국이나 다름없었지요.

 

밥 대신 미국식으로 삼시세끼를 먹다보니 처음 3개월이 지나고 한국 음식이 그리웠던 적도 잠깐 있었지만 금방 극복하고 이것 저것 주는대로 먹다보니 교환학생 10개월동안 무려 7키로가 쪘더라고요.

 

미국 대학생이 되어서부터 지금까지도 밥 대신 다양한 음식을 주로 먹는데, 교환 학생때와는 다르게 한국음식이 정말 먹고 싶고 생각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환 학생때는 어려서였는지 아파도 한국 음식 생각이 별로 안났는데, 20대가 되고 나니 제가 감기에 걸렸거나 배가 아프거나 아무 이유 없이 컨디션이 좋지 않은 순간들엔 무조건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하지요.

 

쌀쌀했던 초봄에 먹은 감자탕이에요.

대학교 졸업 직전에 접촉사고 후 후유증으로 몸이 안좋았던 날 한국식당에서 따뜻한 수제비를 먹으니 아팠던 근육이 다 풀어지는 느낌이였어요. 

 

재작년 겨울에 감기에 걸려서 한참 아팠던 적이 있는데, 집에 당장 해 먹을 수 있는 따뜻한 국이나 찌개 재료도 없고 한국음식은 꼭 먹어야 됐어서 아픈 몸을 이끌고 한 시간 반을 운전에 한인타운까지 가서 한국 음식을 먹고 포장까지 해 왔었답니다.

 

"역시 한국인은 밥심이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따뜻한 국에 밥을 말아 먹고 나니 한결 나아진 기분이더라고요.

 

3. 기다리는게 너무 힘들 때!

 

한국이 "빨리 빨리"의 나라라면, 미국은 속이 터지는 "느릿 느릿"의 나라입니다.

 

식당을 가도 느긋, 마트을 가도 느긋, 관공서를 가면 더 느긋, 어느 곳을 가도 본인 할 일 다 하고 서두르는 사람 없이 느긋한 곳이 미국이에요.

 

미국에는 식당에 콜 벨이 없고 뭐가 필요하면 웨이터가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거나, 돌아다니는 내 웨이터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야 된다고 예전 글에서 언급 한 적 있었죠?

 

콜벨이 없고 웨이터 또한 느긋하다보니 미국 식당에서 뭐 하나 필요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고, 마트에서도 마찬가지로 캐셔와 손님이 느긋하게 대화를 하며 계산을 해 주는데, 한국에서 나고 자란 저는 "처음 보는 사람끼리 무슨 할 말이 저리 많은가?" 싶다가도 미국에서 7년 살았다고 제 차례가 오면 제 자신도 캐셔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더라고요.

 

가는 곳마다 이렇게 한참을 기다려야 하다보니 속이 터질 때가 많은데, 기다리다 지친 성질 급한 제 입에서 "오 마이 갓..." 소리가 나오면 제 미국인 남자친구는 "I know, I know. (알아, 알아.)" 하면서 저를 달래준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여기 한국이였으면 저 사람들 다 짤렸어~" 라고 한마디 더 거들지요.

 

태어나서 부터 이렇게 살다보니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에 단련된 미국인들이지만 미국인들 역시 정말 답답하다고 생각하는 곳이 한군데 있답니다.

 

바로 DMV라고 불리는 미국 운전면허국이에요.

 

 출처: www.rollingstone.com/movies/movie-reviews/zootopia-92993/

영화 주토피아 DMV의 한 장면

 

DMV에서는 다양한 운전면허 시험을 포함해 운전면허 업무를 담당하는데, 불친절하고 느리기로 악명높은 곳이라 미국인들도 가기 꺼려하는 곳이랍니다.

 

코로나 전에는 예약없이 가면 하루 종일 기다려야 했었고, 코로나 이후에 100% 예약제로 바뀌고 나서는 예약 한번 잡는데만 몇주가 걸리니 말 다했죠 뭐.

 

일처리가 느려 터진 것도 문제지만, 직원들이 본인도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는 경우가 정말 많아서 안그래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상사에게 물어보고 상사는 여기 저기 전화해서 물어보느라 시간 다 가요. 

 

영화 주토피아에서 나무늘보가 DMV에서 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눈 한번 깜빡거리고 손님들의 말을 알아듣는데 하루 종일 걸리는 걸 보고 실제 상황과 정말 똑같아서 너무 웃겼답니다!

 

4. 영어 속에서 한국어가 들리면 한국어가 귀에 딱 꽂힐 때!

 

미국에 오래 살다보니 영어를 쓰며 사는 것도 꽤 편해졌지만 집중을 하지 않으면 아직도 영어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모국어인 한국어는 다르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영어 또는 다른 언어들로 웅성거리며 대화를 하고 있는 곳에 있다보면 그냥 사람들의 말소리로만 들릴 뿐 뭐라고 하는지는 잘 안들리는데, 한국인 한 사람이 한국어를 하기 시작하면 영어를 포함한 다른 언어들은 음소거가 되고 한국어만 들리는 것처럼 정말 명확하게 한국어만 들린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애틀란타에 있는 관광지 Stone Mountain (큰 돌로 된 산)에 갔을 때 공원에 많은 가족 단위의 미국인들이 웅성거리며 걸어다니고 있었는데, 한국 아주머니가 아이에게 한국어로 타이르는 소리가 제 귀에 들리기 시작하니 정말 딱 그 소리만 들리더라고요.

 

이 때 부터 지금까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역시 나는 한국인이고 내 모국어는 한국어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5. 한국인이 범죄 피해를 당했다는 뉴스를 보면 내 일처럼 화가 날 때!

 

여러분, 얼마전에 미국 조지아주의 애틀란타에서 가슴아픈 일이 있었지요?

 

20대 백인 남자가 애틀란타의 마사지숍 세 곳에서 총격을 가해 8명을 숨지게 했는데, 그 중 6명이 동양인 여성이고 숨진 동양인 여성들 중에서도 4명이 한인 여성이였다는 슬픈 소식이였어요.

 

코로나로 인한 동양인 혐오 범죄인지, 아니면 애틀란타의 경찰 말 대로 정말 "성 중독"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 아직 정확한 판결이 나지 않았으니 모르지만 모든걸 다 떠나서, 열심히 사는 우리 한국 교민들에게 이런 일이 생겼다는게 참 제 일 인 것 처럼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또 피해자들의 이름을 보니 정겨운 한국 할머니들의 이름이라 더 슬펐고, 피해를 입은 마사지숍들 중 한 곳은 제가 있는 곳으로부터 한시간 거리인데, 혹시 또 다른 한인들이나 나에게도 동양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섭기도 했어요.

 

출처: www.latimes.com/world-nation/story/2021-03-19/atlanta-area-spa-shootings-highlight-knotted-extremist-ideas-scholars-say

"지금 당장 동양인 인종차별을 멈춰주세요!"

 

이런 큰 사건 뿐만 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한인들을 겨냥한 동양인 혐오 범죄가 요즘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런 소식들이 들려 올 때마다 피해자가 저와 같은 한국 뿌리를 가졌다는 이유로 마치 제가 그 일을 겪은 것처럼 마음이 무겁답니다.

 

미국에 사는 제 주변의 한국인들도 모두 저와 같은 마음이고요.

 

한국을 떠난지 아무리 오래 되었다고 한 들, 한인 피해자들에 대해 한 마음 한 뜻으로 마음 아파하는 걸 보면 각자 사는 곳만 다를 뿐 우리 모두는 물보다 진하다는 피로 맺어진 끈끈한 한국인 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조금 무거운 주제였는데요, 이 글을 쓰다보니 이런 힘든 시기에도 한국에서, 한국을 떠나 세계 곳곳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꿋꿋하게 살아가는 우리 한국인들이 참 대단하고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는 의지의 한국인이니 조금 더 버텨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 갈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길 바래봅니다.

 

애틀란타 총격사건의 피해자분들의 명복을 빌며, 무거운 마음으로 오늘 글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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