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가 지난 세 학기보다 유난히 힘들었던 이유는 두 개의 해부생리학 수업 (해부생리학 1, 해부생리학 2)때문이였습니다.
하나만 들어도 힘들다는 해부생리학 수업을 한 학기에 두 개를, 게다가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공부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미국 학생들도 어려워하는 과목이여서 같은 반 친구들 중에는 같은 수업을 3번째 듣는 친구도 있었고, 점수가 다 나온 지금, 재수강을 해야 하는 친구들도 많지요.
해부생리학 1 과 해부생리학 2를 각자 다른 교수님께서 가르치셨는데, 두 분의 수업 스타일은 180도 달랐습니다.
뼈, 근육, 신경 등 전반적인 해부학에 대해 배웠던 해부생리학 1의 남자 교수님이신 L교수님의 수업은, 1시간 15분 수업인데도 불고하고 보통 짧게는 30분, 길게는 50분 안에 끝났습니다.
하루에 반 챕터, 혹은 한 챕터의 진도를 나가며 보통 50장 내외의 파워포인트를 한 수업시간에 배웠는데, 빽빽한 파워포인트를 한번 읽어주고 강의가 끝나다 보니 수업이 제 시간에 끝날 일이 없었고, 어려운 내용임에도 잘 설명 해 주시지 않으니 이해는 학생들의 몫이었지요.
학기가 시작 하기 전, 그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의 말 대로 L교수님의 수업은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인 별 필요 없는 수업이었습니다.
저는 몸이 안 좋았던 날 하루만 빼고 다 출석 했지만, 교수님의 수업 스타일 때문에 학생들의 출석률은 항상 저조했지요.
반면에 감각기관, 순환계, 호흡계, 비뇨계 등 생리학을 주로 다뤘던 해부생리학 2를 가르쳤던 여자 교수님인 J교수님은 수업시간에 지루할 틈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단 한번도 5분 이상 일찍 끝난 적 없는 이 수업은 교수님이 항상 재미있게 설명 해 주셨고, 앞서 글에서 이야기했듯 왜 맥주를 많이 마시고 나면 물을 많이 마셨을 때 보다 화장실에 더 자주 가고 싶은지, 과 호흡 환자가 발생 했을 경우 왜 비닐봉지에 대고 숨을 쉬게 해야 하는지, 피임약이 어떤 원리로 피임이 되게 하는지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시를 가지고 토론하고 원리에 대해 설명을 듣다 보니 배움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절실히 깨닫게 된 수업이었습니다.
강의에서 뼈의 역할, 신경이 전해지는 과정, 근육이 움직이는 과정, 생리학의 원리를 배웠다면 월요일마다 있었던 Lab(실험실)수업은 뼈의 이름, 근육의 이름, 신경계의 이름, 몸 속 모든 장기뿐만 아니라 장기의 부분과 뼈의 부분 하나하나의 스펠링까지 모두 외워야 했던 잔인한 수업이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10시엔 해부생리학 2 Lab수업을, 2시에는 해부생리학 1 Lab 수업을 가야 했었지요.
강의 시험은 보통 우리가 알고있는 시험처럼 자리에 앉아서 종이와 OMR카드 (미국에서는 Scantron sheet 또는 Answer sheet 이라고 불러요.)로 시험을 보거나, 서술형 시험의 경우 시험지에 답을 직접 적어서 내지만, Lab 시험은 다릅니다.
실험실에 6명 씩 한 줄로 나란히 앉을 수 있는 긴 책상 5줄이 있고 시험 볼때는 자리마다 칸막이를 설치 해 두는데, 각 자리마다 뼈 모형, 인체모형, 근육 모형, 고양이 시체가 한 두개씩 올려져 있답니다.
예를 들어 허벅지 뼈 모형이 있다면, 왼쪽 뼈인지 오른쪽 뼈인지, 뼈 이름은 무엇인지, 뼈 모형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보고 그 위치의 이름은 무엇인지 답안지 한칸(=한 문제)에 세개 답을 스펠링까지 맞게 적어야 하지요.
교수님의 지도에 따라 일정 시간 (약 1분)마다 옆자리로 옮겨 다음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50문제를 풀고 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랩 시험을 위해 공부해야 했던 팔뼈와 근육 목록.
특히나 해부생리학 1의 경우 강의시간에 배우는게 없다보니 이해를 못 하는 부분이 있으면 이해를 한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 해 설명을 들어야 했었고, 저 또한 근육이 움직이는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이민자 출신 친구인 니콜라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아야 했었답니다.
Lab 시험이 있을 때면 시험 며칠 전 날 부터 학교 실험실에 짐을 싸들고 가서 친구들과 새벽까지 공부하곤 했었습니다.
외워야 될 양이 너무 많아서 혼자 공부하다보면 지치고, 시험은 인체 모형으로 봐야 해서 시험 며칠 전 부턴 학교 실험실에 친구들이 많았는데, 같이 근육 모형을 보면서 근육이름을 외우고, 해부했던 고양이를 냉장고에서 꺼내 혈관, 근육, 장기들의 이름을 같이 외우고 시험보고, 헷갈려 하는 친구가 있으면 서로 잘 도와주었습니다.
해부생리학 2보다 훨씬 어려웠던 해부생리학 1은 특히나 공부 할 때 친구들이 꼭 필요했는데, 시간을 정해놓고 "한 시간 후에 팔 뼈 (humerus, ulna, radius), 와 손 뼈를 부분들까지 모두 외워 시험보자!" 며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어려운 시험들을 잘 해쳐나갔지요.
새벽 세시 반까지 실험실에서 뼈 이름을 외웠던 날.
해부생리학 1 수업은, 기말고사 당일까지도 우리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기말고사 전 날, 친구들과 학교 도서관 일층에 있는 스터디룸을 빌려서 하루종일 같이 공부했고, 기말고사 시험 전에는 제가 한국어로 기도 해 줘야 시험을 잘 보는 징크스가 있어서 기도 해 달라는 친구들의 요청에 제가 대표 기도를 해 주었지요.
(예전에 시험 보기 전 친구들의 요청으로 친구들과 손을 잡고 한국어로 기도 해 준 적이 있는데, 우연히 같이 기도했던 친구들 모두 시험을 다 잘봐서 기독교가 아닌 니콜라스까지도 제 기도를 원하게 되었어요ㅎㅎ)
어려웠던 기말고사를 잘 끝내고 강의실을 나오며 뒤를 돌아 아직 시험을 보고 있는 제 친구들을 문밖에서 바라보니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힘들었던 수업을 잘 끝냈다는 안도감에, 한 학기를 서로 힘을 합쳐 잘 버텨냈다는 것에,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에, 힘들었지만 좋은 친구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그리울 것 같다는 생각에 떠져나오는 눈물을 꾹 참아야 했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 중 낙제한 친구들도 많지만, 저와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 대부분은 좋은 성적을 계속 받았었는데, 서로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대견함에 가슴이 벅차기도 했고요.
이 고마운 친구들과 한 학기를 보내며 해부생리학 보다 더 큰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치열한 상대평가여서인지 한국 학교에서는 서로를 도와주는 일이 잘 없었는데, 같이 해부생리학을 공부했던 스터디 그룹 내의 친구들은 서로를 진심으로 도와줬고, 누군가가 이해를 못 하고 있으면 이해 할 때 까지 설명 해 주었습니다.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평생 갖고 살던 저는, 해부생리학 수업을 통해 서로 힘을 합하면 더 큰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 협동심을 발휘하면 못 이루어 낼 것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고, 한 학기동안 좋은 친구들과 함께 공부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늘 낮에, 다음학기부터 플로리다주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게 되서 이제는 같이 공부 할 수 없을 니콜라스를 배웅하고 왔습니다.
니콜라스가 제가 겨울 방학때마다 미시간에 간다고 아버지께 말 했는지, 니콜라스 아버지는 저를 보시더니 방학때 미시간에 가지말고 플로리다에 놀러오라고 하셨고 우리를 위해 같이 사진도 찍어 주셨습니다.
해부생리학 뿐만 아니라 니콜라스와 거의 매일 밤 도서관의 같은 테이블에 앉아 공부 하곤 했었는데 그 시간들이 벌써부터 그립습니다.
다음학기도 이번학기에 얻은 큰 깨달음을 가지고 친구들과 함께 어려운 수업들을 또 잘 버텨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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