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블로그에 자주 방문 해 주시는 분 들이라면 저의 호스트맘이 얼마나 저를 사랑하시고 10개월동안 정성껏 보살펴 주셨는지 이미 알고 계실거예요.
하지만, 아직까지도 호스트맘이 저에게 배풀어 주신 사랑을 다 적지 못 했기에 오늘은 호스트맘과 저의 감동적인 사랑이야기에 대해 적어보려고 해요.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은 10개월동안 무료로 미국인 가정에서 지내게 되는데 같이 살게 될 미국 가족을 "호스트 패밀리" 라고 부른답니다.
호스트패밀리는 독신가정이 될 수도, 아이가 많은 집이 될 수도, 노부부의 집이 될 수도 있는데요, 교환학생은 10개월 동안 무료로 미국의 자원봉사 가정에서 머물게 되니 호스트패밀리 선택권은 아쉽게도 교환학생에게는 없습니다.
호스트 패밀리가 교환학생을 선택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어떤 가정에 배정되는 무조건 받아 드려야 되요.
제가 교환학생 신청서를 작성 할 때 아이가 있는 집에 배정되고 싶다고 몇 차례나 언급했었고 그런 집을 정말로 원했었기 때문에 호스트 패밀리가 호스트맘 한 분에 독일 교환학생 라라(Lara)와 더블배정 이라는 사실을 알고 무척이나 실망스러워 했었습니다.
유학원으로부터 배정 소식을 받고 바로 호스트 패밀리 정보가 담긴 메일이 와서 저는 메일에 적힌 전화번호로 바로 전화를 걸었답니다.
제가 원하는 호스트 패밀리의 형태가 아니라 무척이나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10개월 동안 나랑 함께 살게 될 미국인 가족은 누구일까 몹시 궁금했기 때문에 미국시간은 생각도 못하고 전화를 걸었는데요, 미국에 가서 호스트맘과 그 때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때 미국은 이미 밤 11시가 되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무척이나 미안했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다정한 목소리의 호스트맘께서 전화를 받으셨고 제가 교환학생으로 가게 될 Stella라고 소개하자 호스트맘께서는 방청객 못지 않은 리엑션을 보여주셨답니다.
그때는 영어도 부족하고 너무 흥분하신 호스트맘께서 말을 랩하듯 하셔서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우리(라라와 호스트맘, 라라는 먼저 배정을 받고 벌써 같이 살고 있었답니다.)는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라며 좋아하시는 호스트맘의 목소리를 들으니 몇 분 전 실망했던 기억은 다 잊고 행복한 마음만 들었었답니다.
전화를 하며 호스트맘과의 호칭을 정했는데, 호스트맘께서는 Susan, Sue, Mom 등 원하는 걸로 불러 달라고 하셨고, 어른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저는 Mom이라는 호칭을 선택하게 되었답니다. (대부분의 교환학생들은 Mother, father 이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지금까지도 호스트맘을 미국공항에서 처음 만났던 때를 잊을 수가 없는데요, 제가 출구로 나오자 제 이름을 쓴 종이를 들고 방방 뛰시며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을 만난 듯 저를 맞이 해 주셨답니다.
차에 제 짐들을 싣고 차에 타자 라라는 학교에서 치어리더 연습이 있어서 같이 못왔다고 하시며 배고플까봐 준비해 오셨다는 도시락가방을 주셨습니다. (학교 시작일은 9월 2일이였고, 저는 비행기 스케줄 때문에 9월 6일에 미국에 도착하였습니다.)
도시락 가방에는 물과 여러 종류의 과일이 담겨 있었는데요, 피 한방울 안섞인 모르는 외국인인 저한테 이렇게 신경을 써 주셔서 너무 고마웠답니다.
공항에서 집에 가는 약 1시간동안 차 속에서 호스트맘은 자신의 가족 소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천천히 해 주셨습니다. 미국에 막 도착했을 때라 영어도 안되고 바깥 경치를 구경하느라 100%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말투에서 호스트맘의 다정한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미국생활 며칠이 지난 날 학교에 가려고 일찍 일어나 거실로 내려온 저에게 호스트맘은 편지 한 장을 건네셨습니다.
"신께서 너를 우리 가족의 일부로 선택하셔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너는 정말 아름답고 친절한 소녀야. 나는 너의 부모님이 미국에 오도록 허락 한 것을 보니 너를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시고 사랑하실지 알 것 같아. 네 부모님께 선물과 나를 믿고 미국에 보내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해 줘. 우리집은 또한 이제 너의 집이니 모든 음식은 언제든지 먹어도 된다고 허락해. 나는 네가 배고픈것과 먹기 싫은 음식을 먹는 것은 원치 않아. 너는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이야. 좋은 친구들을 너를 위해 기도할께."
따뜻한 편지를 읽고 나서 저는 호스트맘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답니다.
9월 말쯤 버릇없었던 라라는 호스트맘의 집에서 쫓겨나 다른집으로 옮기고 저랑 단 둘이 살게 되면서 호스트맘과는 더 친해지게 되었답니다.
호스트맘께서는 부모님이 오시는 모든 학교 행사에 참여하셨고 다른 부모님들처럼 저를 따라다니며 사진도 많이 찍어 주시고 아낌없이 칭찬도 해 주셨답니다.
또한 2번의 여행에서 호텔비를 포함한 모든 돈을 호스트맘이 지불하셨고 학교급식은 제 돈으로 사먹으니까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외식할 때는 사 주신다며 대부분 호스트맘께서 제 몫까지 계산 해 주셨답니다.
호스트맘께서 한국음식과 한국문화를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드리시며 즐기셨다는 것을 제 블로그에 자주 방문 하시는 분들은 알고 계실 텐데요, 호스트맘께서는 한국음식(김치, 라면, 떡 등)을 자주 사 주셨고, 제 요리를 맛있게 먹어 주셨답니다. 볶음밥 만들기를 배우기도 하셨고요!
저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호스트맘께 너무나 감사해서 저희 부모님은 선물을 자주 보내 주셨습니다. 호스트맘께서 제가 돈을 드리려고 하는 것을 정말 싫어하시니 부모님께서 쇼핑하다 발견하신 예쁘고 아기자기한 이것저것을 자주 보내 주셨는데요, 선물을 받으실 때마다 자신은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라며 우셨고 저를 미국에 오도록 허락해 주고 자신을 믿고 맡겨줘서 고맙다며 제 부모님께 편지도 자주 보내셨습니다.
물질적인것 뿐만 아니라 호스트맘께서는 제 마음 또한 잘 이해해 주셨고 어려운 숙제가 있으면 꼭 도와주셨답니다. 은퇴하신 고등학교 선생님이셔서 인지 호스트맘께서는 저와 정말 잘 맞았는데요, 한국나이로 60대 초반이신 호스트맘은 저와 좋아하는 취미도 비슷했답니다.
제가 피아노 치기를 좋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호스트맘께서는 할머니(호스트맘의 어머니)댁에서 전자 피아노를 빌려와 제가 매일매일 피아노를 칠 수 있도록 해 주셨고 제가 피아노 칠때마다 동영상을 찍어 주시고 전화를 걸어 할머니께도 제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한국으로 돌아 갈 날이 한 달 정도 남았을 때부터 저와 호스트맘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호스트맘께서 교환학생 재단에 전화를 걸어 미국에 좀 더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이 있냐고 몇차례나 물어봤지만 보험 때문에 안된다고 해서 실패 했고, 비행기표, 짐 규정 등을 확인 할 때마다 호스트맘과 저는 울었답니다.
호스트맘께서는 저를 위해 한국에 돌아가기 며칠 전 Going away 파티를 열어주셨습니다.
제 집에 놀러온 친구들은 자신의 방보다 더 좋다며 제 방을 부러워 했고 Stellla의 호스트맘은 정말 좋으신 분이라며 칭찬하니 제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한국으로 돌아 오던날 미국 공항에서 호스트맘과 두명의 친한친구 카너(Connor)와 제이미(Jamie)랑 엉엉 울었습니다.
호스트맘과 제이미, 그리고 저는 부둥켜 않고 어린 아이처럼 울었는데 우는 모습을 본 공항의 직원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지 제 짐가방 하나도 꽁짜로 보낼 수 있게 해 주시고 자리까지 업그레이드 해 주셨답니다.
한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 공항으로 가는길, 저는 비행기 안에서 계속 울었는데 고맙게도 옆에 앉은 미국인 아저씨께서 티슈를 건네주셨습니다.
시카고 공항에서 일본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아직까지는 사용 가능한 핸드폰으로 호스트맘과 제이미, 카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헤어진지 1시간이 조금 넘었는데 벌써부터 너무 보고싶고 그리운 목소리를 들으니 또다시 눈물이 나서 유엠서비스 직원이 지켜보는 앞에서 엉엉 울었습니다.(부모 없이 혼자 여행하는 아이들을 위해 공항직원이 안내해 주는 유엠서비스를 신청하면 직원은 화장실까지 따라 옵니다.)
시카고에서 일본으로 오는 12시간의 비행과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2시간의 비행동안 잠은 거의 안자고 울기만 했는데 미국의 코믹 영화인 마틸다를 보면서도 눈물은 계속 흘러 나왔습니다.
한국 공항에 도착 해 부모님을 만나서도 미국에 다시 가고 싶다며 울고, 집에 도착해서 울고, 몇시가 되든 상관 없으니 집에 도착하자 마자 전화해 달라는 호스트맘의 말씀대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하면서 울었답니다.
일본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우는 어린 쌍둥이들 때문에 고생 한 저에게 호스트맘께서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안에는 우는 아이는 없었냐고 물어보셨는데 12시간 내내 우는 아이가 있었다고 대답하자 호스트맘께서는 울음소리 때문에 고생했겠다고 하셨고 그 아이가 나라고 하자 울고있던 호스트맘께서는 웃기 시작하셨습니다.
한국에 돌아오기 전 날밤, 10장의 포스트잇에 감사의 인사를 적어 집 이곳저곳에 붙여 놓았는데, 호스트맘은 그 포스트잇을 하나하나 보시며 한참동안이나 우셨다고 하셨습니다.
한국에 돌아온지 1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호스트맘과는 매일매일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하는데요, 항상 저를 학교에 태워다 주시고 데리러 와 주셨던 호스트맘, 제가 학교 급식으로 맛있게 먹었다는 음식 이름을 알아오라고 하셔서 요리 해 주셨던 호스트맘, 학교 생활에 잘 적응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호스트맘, 저를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드려 주신 호스트맘, 저를위해 매일 기도해 주시는 호스트맘, 제가 한국에 돌아온 뒤 마트에 갔다가 발견했다며 모기알러지가 있는 저를 위해 모기 퇴치 패치도 보내주신 호스트맘, 사랑의 편지를 자주 보내주시는 호스트맘이 너무너무 그립습니다.
제가 Mom 이라고 부르면 What my dear? 이라고 대답하시며 사랑을 배풀어 주셨던 호스트맘을 생각하니 어떻게 피 한방울 안 섞인 외국인에게 스스럼 없이 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정말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답니다.
교환학생들 통해 만난 호스트맘과 저는 호스트맘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더이상 호스트맘과 교환학생의 관계가 아닌 정말 엄마와 딸의 관계였습니다.
호스트맘의 사랑을 배풀고 싶어 몇 달 전부터 지역아동센터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데 호스트맘께서 그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뻐 하셨고, 아이들을 대하는 비법도 가르쳐 주셨답니다.
호스트맘과 다시 만날 날을 그리며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호스트맘과의 감동적인 사랑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될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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