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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마트에서 미국인 남자친구와 한국인 아주머니 사이에 있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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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오징어 게임 등 한국 문화가 미국에서 유행처럼 번져가면서 최근 몇 년 새 불고 있는 한인 열풍 때문인지, 미국 내 한인마트를 가보면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장을 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으로 제가 미국에 처음 왔던 2012년만 하더라도 한국이 어디에 붙어있는 나라인지 모르는 미국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제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방탄소년단의 나라!", "오징어 게임의 나라!", "우리 집 가전제품 대부분은 한국 제품!"이라며 미국인들이 먼저 아는 척을 해 준답니다.

 

10년 사이에 어떻게 이렇게 한국의 위상이 바뀔 수 있었나 신기하면서도, 한국의 맛있는 음식들과 재미있는 드라마 그리고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를 생각해보니 미국인들이 한국문화에 한번 빠져버리면 헤어 나오기 힘든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한인타운에 있는 대형 한인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으면 여러 인종의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습니다.

조지아주 둘루스 한인타운에 있는 한인마트

 

한국 드라마에서 본 한국음식을 먹고는 싶은데 무슨 재료를 사야 할지, 무슨 재료가 맞는 재료인지 몰라서 한참을 두리번 거리며 서 있다가, 다양한 한국의 식료품이 가득 담긴 쇼핑카트를 끌고 오는 동양인인 저를 보고 "제가 한국음식을 하려는데 어떤 간장을 사야 하나요?", "만두 종류가 너무 많은데 어떤 만두가 맛있어요?"라고 물어본답니다.

 

그럴 때마다 한국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서 먹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국의 외교관이라도 된 듯 "이건 국간장이라 국에 넣으면 맛있고, 이게 일반 간장이에요.", "만두를 어떻게 요리하고 싶으신데요?" 라고 정성을 다해 제가 아는 대로 설명을 해주고 요리에 맞는 재료도 골라줍니다.

 

종류가 너무 많아 뭐가 뭔지 몰랐는데 제 설명이 큰 도움이 되었다며 고맙다는 상대의 말 한마디에 저까지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한국인으로서 한인마트에서 항상 한국음식을 잘 모르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저 없이 한인마트를 돌아다니던 제 미국인 남자친구 알렉스와 한국인 아주머니 사이에 있었던 훈훈한 일화를 소개하려고 해요!

 

미국의 추수감사절이었던 지난 11월, 추수 감사절 다음날 알렉스와 알렉스의 부모님을 모시고 한인마트에 다녀왔답니다.

 

한인마트에는 평범한 미국마트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과일, 채소 그리고 식재료들이 많아서 알렉스가 부모님을 꼭 모시고 오고 싶다고 예전부터 얘기했었거든요.

전 세계 각지에서 온 과일과 채소를 팔고 있답니다!

 

미국 마트에서 보기 힘든 채소들과 해산물 그리고 예쁘게 포장되어 파는 고기들을 한참동안 둘러보시다가 알렉스 어머니와 저는 한국 화장품을 사러 마트 내에 있는 화장품 가게에 들렀고, 알렉스와 알렉스 아버지는 알렉스가 좋아하는 한국 반찬들 사러 반찬들을 둘러보러 갔어요.

제가 자주 가는 마트내 화장품가게

많은 한국 브랜드의 화장품들을 팔고 있습니다.

다양한 국과 반찬들을 팔고 있는 반찬코너

여기가 한국인지 착각이 들 정도로 한국의 마트와 정말 비슷한 미국 내 한인타운의 모습입니다.

알렉스와 저는 한인마트에 올 때마다 국과 반찬들을 자주 사가는데, 입이 심심할 때마다 간식으로 꺼내 먹을 정도로 알렉스도 한국 반찬들을 정말 좋아합니다.  

 

금발머리에 파란눈을 가진 알렉스가 한국 반찬을 맛있다며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면서도 웃길 때가 있어요.

많은 반찬들 중에서도 알렉스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은 가지나물 무침입니다.

 

이 날도 가지 무침을 사겠다며 저와 알렉스 어머니가 화장품을 구경하는 동안 아버지를 데리고 반찬코너에 갔던 거죠.

 

알렉스가 먹고싶어했던 가지무침을 카트에 담아 제가 있던 화장품 코너로 왔는데, 저에게 신나서 "이 반찬들 반값으로 세일한대!" 라며 얘기하더라고요.

반값에 할인하는 반찬들

 

보통 세일하는 반찬은 반찬에 주황색 스티커가 붙어있는데 알렉스가 집어온 가지무침에는 스티커가 붙어있지 않아서 세일하는지 어떻게 알았냐고 했더니 "장을 보고 계시던 한국인 아주머니가 오후 5시 이후엔 반값이라고 계산할 때 꼭 할인받으라고 이야기해 주셨어!"라고 대답했어요.

 

한인마트에서 장을 보다보면 한국음식이 익숙하지 않아서 무엇을 사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보며 정 문화가 있는 한국에서 자란 저는 괜히 걱정될 때도 있는데, 그 아주머니께서도 금발의 두 백인 남자가 한국 반찬들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장을 보는 모습에 걱정되었던 것인지 알렉스가 반찬을 집어 카트에 넣으니 오셔서 알려주셨대요.

 

저도 몰랐던 이 꿀같은 정보를 고마운 아주머니 덕에 알렉스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계산을 다 하고 나와 주차장에서 우연히 다시 그 아주머니를 뵙게 되었는데, 아주머니께서 알렉스에게 반찬 할인을 받았는지 물어보셨어요.

 

알렉스가 도움을 요청한 것도 아닌데 먼저 오셔서 꼭 할인받으라고 한국억양이 섞인 영어로 알렉스에게 친절히 이야기해 주시고 잘 할인을 받았는지 확인까지 해 주신 한국 아주머니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런 게 바로 한국의 정(情) 이지요?

 

그 아주머니 덕분에 알렉스의 부모님께 한국의 정 문화를 보여드릴 수 있었던 것 같아 어깨가 으쓱했어요. 

 

이 일을 계기로 한인마트에서 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면 더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도와줘야겠어요!

 

그 아주머니께서 제 블로그를 볼 확률은 아주아주 낮겠지만, 혹시나 보시게 된다면 감사했다고 다시한번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런 분들이 계셔서 지구 반대편의 먼 타국에서도 한국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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