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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 그 후 10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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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을 가게 된 계기와 교환학생 프로그램 중 미국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는데, 사정상 어쩔 수 없이 미국에 남지 못하고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친 뒤 2013년 6월 한국에 귀국했다는 제 이야기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2023.08.15 - 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 그 후 10년 (1)

 

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 그 후 10년 (1)

미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한 달, 일 년이 이렇게 빠르게 지나가진 않았던 것 같은데, 똑같은 일을 하며 비슷한 하루하루를 살아서인지 아니면 진짜 나이가 들어서인지 얼마 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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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끝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미국 대학교로 유학을 있었는지 이야기를 보려고요.

 

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 자격으로 10학년을 다니고 2013 6 5 한국에 귀국했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정말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무리가 있었는데, 제가 귀국한다는 사실을 무리의 두 명의 친구에게만 이야기를 했었어요.

 

귀국 다음날, 현충일이었던 6 6 친구들 모임에서 제가 깜짝 등장할 예정이었지요.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노래방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이미 제가 온다는 사실을 알았던 친구들이 오히려 저를 위해 깜짝 파티를 준비해 놓았던 기억이 생생하답니다.

 

비록 10개월 떨어져 있었지만 보고 싶었던 가족들과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먹고 싶었던 한국 음식도 마음껏 먹을 있으니 귀국 직후엔 행복한 시간들이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저의 진로에 대해 고민해야 시간이 거예요.

 

한국에 돌아와서 학년을 유급해 1학년 2학기로 복학할 계획으로 미국 교환학생을 떠났는데, 막상 귀국하니 답답한 한국 고등학교에 복학하기 싫어졌고, 보다 어린 학생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것은 싫었어요.

 

꿈인 미국 간호사가 되려면 굳이 지루하고 힘든 한국 고등학교를 필요도 없었고요.

 

교환학생 후반쯤부터 어떻게 한국인이 미국에서 간호사가 있는지 알아봤던 저는 엄마, 아빠께 한국 고등학교를 가는 대신 고졸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선언을 했는데, 계획에 없던 검정고시를 갑자기 보겠다고 하니 특히 아빠께서는 반대가 심하셨어요.

 

"고졸 검정고시를 합격해 버리면 고등학교에 돌아가고 싶어도 못 간다.", "쉬운 검정고시를 공부해서 나중에 어려운 수능은 어떻게 보려고 하냐."부터 시작해서 "학생이 학교를 다녀야지 검정고시가 말이 되냐.", "검정고시 보고 사회에 나가면 남들이 안 좋게 본다.", "다시 미국에 못 보내준다."라고 말씀하셨었지요.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저의 의견이 너무 강해서 결국 제 부모님께서는 검정고시 보는 것을 허락하셨고, 두 달 뒤 8월에 있는 검정고시에서 평균 90점을 넘으면 다시 미국에 보내주신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그 해 만 16살의 여름을 저는 독서실에서 보냈고, 한국 고등학교로 돌아가는 대신 고졸 검정고시를 평균 90점 이상의 점수로 합격했습니다.

 

검정고시 합격증을 가지고 한국의 전문대 개념인 미국의 Community College 진학을 위해 유학원 여러 곳을 상담하면서 토플과 SAT 학원을 다니며 공부했었고, 그러던 도중 미국의 4년제 주립 대학교를 외국인 학비 면제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인 학비보다 3분의 1 이상으로 저렴한  그 주에 사는 거주자 학비를 내며 다닐 수 있다고 소개하는 유학원을 만났습니다.

 

그때도 미국의 큰 병원들에서는 4년제 학사학위 이상을 가진 간호사만 뽑는 추세라는 것을 알았었지만, 비싼 미국 대학교의 학비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문대만 알아보고 있었는데, 학기당 한국 돈 500만 원 정도로 4년제 미국 대학교를 다닐 수 있다니 마다 할 이유가 없었지요.

 

대신 조건이 있었는데, 필수로 첫 한 학기 동안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하는 것과 일정한 학점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2014년 당시에 수속비라는 명목으로 300만 원 이상의 돈을 주고 유학원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한국의 검정고시 졸업장으로 미국의 4년제 대학교를 가려고 하니 대부분의 대학교에서 한국의 검정고시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유학원에서 가르쳐준 대로 방송통신대학교를 1년 다니며 편입식으로 미국대학교에 입학했어요.

 

한국 검정고시 출신이 아닌 한국 대학교 편입생 출신으로 토플과 한 학년의 방송 통신대학교 성적을 가지고 그렇게 다시 만 18살이었던 2015년 8월 미국에 오게 되었지요.

 

미국 대학교에서의 첫 학기였던 어학연수 프로그램은 2015년 당시 한 학기 수업료가 현재 한국 돈 1000만 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대부분이 한국 학생들보다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중국 학생들과 남미 학생들이었고, 그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대학생활 내내 저에게 도움을 주셨던 고마운 선생님을 만났지만, 저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되었던 수업들이었어요.

 

게다가 미국에 도착하고 나서야 이미 와 있던 한국인 선배들로부터 외국인 학비 면제를 받으려면 주 당 5시간에서 10시간의 교내 봉사를 해야 하고, 유학원과 계약하지 않고 혼자 알아보고 왔다면 별 필요 없는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하지 않고도 외국인 학비 면제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때 "영어를 좀 더 잘하고 미국 대학교 지원 시스템을 잘 알았다면 유학원 수속비와 체류비, 어학연수 수업료까지 약 2000만 원의 돈을 아끼고 시간도 아꼈을 것"이라는 생각에 후회가 되더라고요.

 

미국의 4년제 대학교 간호학과는 보통 2년의 예과과정을 거치고 예과의 성적과 입학시험, 그리고 에세이를 통해 본과 입학생을 선발합니다.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들은 저는 다른 학생들보다 한 학기 뒤처져있었는데, 여름학기를 열심히 들은 덕분에 예과를 일 년 반 안에 끝낼 수 있었어요.

 

학교마다 다르지만 제가 졸업한 간호학과의 경우 당시 본과 진학 경쟁률이 5:1 정도 되었고, 본과에 입학해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본과 지원당시 학점은 4점 만점에 3.7 이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통해 똑똑한 학생들이 모인 간호 본과에서도 많은 학생이 중도 포기하거나 탈락합니다.

 

간호 본과를 시작하면 학기당 보통 3-4개의 과목을 듣고 한 과목당 4-5개의 시험이 있습니다.

 

한 과목의 시험 평균점수가 75점 아래이면 낙제인데, 이번 학기의 수업들이 다음 학기 수업들의 필수 과목이어서 낙제를 받을 경우 다음 학기를 시작할 수 없어요.

 

다시 이 수업이 열리는 다음 해까지 기다렸다가 학교로 돌아와야 돼요.

병원과 똑같이 꾸며진 학교 실습실에서

 

과목에 상관없이 두 번째 낙제부터는 아예 간호학과에서 퇴학당하고 다시는 저희 학교의 간호학과에 입학할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매 학기 낙제를 받고 사라지는 친구들을 보면서 피 말리는 학교 생활을 하는 동시에, 일주일에 한두 번 병원이나 실습실에서 실습도 해야 되고 과제도 많아서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너무 어려워진 수업 내용들과 처음 들어보는 의학용어들 때문에 본과에서의 매 학기가 힘들었지만 힘들었지만, 특히 모든 게 낯설었고 낙제 위기도 있었던 본과 첫 학기가 가장 힘들었는데, 꾸준히 공부하고 성실히 학교 생활 한 덕에 낙제와 유급 없이 2019년 5월, 무사히 간호학과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졸업식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졸업하고 송금 내역을 보니 어학연수부터 졸업할 때까지 외국인 학비 면제 프로그램 덕분에 4년간 생활비, 기숙사비, 책값, 학비 등 모든 경비를 다 합쳐 한국 돈으로 1억 조금 안 되는 돈이 들었어요.

 

졸업 전에 간호사 국가고시를 보는 한국과 다르게 미국은 졸업을 해야 간호사 시험을 볼 자격이 생겨서 졸업 후에도 열심히 공부해 졸업 6주 뒤였던 6월 중순에 간호사 면허시험에도 합격했답니다.

 

졸업 두 달 전이었던 3월에 이미 영주권 지원을 약속받고 병원에 취직해 놓은 상태여서 혹시나 시험에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는데, 우려와는 다르게 최소문제 75문제로 한 시간 반도 안 돼서 시험을 끝내고 나왔었어요.

 

면허시험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보게 되는데 2019년 당시, 최소 75문제에서 최대 265 문제를 주어진 6시간 안에 풀어야 했고, 많이 맞을수록 어려운 문제들이, 많이 틀릴수록 쉬운 문제들이 계속 나옵니다.

 

저의 경우에는 시험 보는 내내 잘하고 있는 건지 제 자신이 너무 의심스러웠는데 어려운 문제 중 하나인 선택지에서 맞는 정답을 모두 골라야 정답으로 인정되는 "모두 고르시오" 문제가 대부분이었고 75번 문제를 풀고 다음페이지로 넘기는 순간 시험이 꺼져서 "당연히 합격했겠구나!"라는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시험장을 빠져나왔답니다.

 

걱정했던 시험이 잘 끝나서 정말 행복했지만 6시간 시험 볼 생각으로 간식도 든든히 챙겨갔는데, 간식 먹을 시간도 없이 시험이 너무 수월하게 끝나버려서 이 한 시간 반의 시험 때문에 지난 4년간 그렇게 고생했나 하는 생각에 한편으론 허무한 마음도 들었어요.

 

집에 와서 트릭을 통해 시험에 합격했나 확인해 봤더니 합격한 것 같아서 그날 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두 다리 쭉 뻗고 마음 편히 자고 아침에 일어나 Board of Nursing (간호 면허국) 홈페이지에 들어가 로그인하니 이미 간호사 면허증과 면허 번호가 발급되어 있더라고요.

 

(시험끝나고 결과 빨리 아는 트릭 - 시험 신청 페이지로 들어가 잘못된 카드 번호를 입력해서 결제하려고 하면 시험에 합격한 경우 시험을 신청할 수 없다고 나오고 불합격한 경우 잘못된 카드 정보라고 나옵니다.)

 

곧 간호학과 학과장 교수님께서 저에게 축하 이메일도 보내주셨어요!

 

가족도 친척도 하나 없는 먼 미국 땅에서 그저 간호사가 되겠다는 고집 하나로 여기까지 왔는데, 그때 노트북 화면에 떠있는 제 간호사 면허증을 보니 그동안의 고생과 시련들을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이후 졸업 학기에 합격했던 병원에 신규간호사로서 무사히 취직도 했고 우수간호사 상도 받았고, 그토록 꿈에 그리던 미국 영주권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조지아주에서 인력이 부족한 병원에 일정기간 계약을 맺고 일하는 트래블 널스를 하며 Six Figure Salary (여섯 자리 연봉=억대연봉)을 벌고 있답니다.

 

한국에서 4, 5등급을 받던 평범한 학생이었던 제가 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간호사라는 꿈을 꾸게 되었고,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막연하게만 보였던 그 꿈을 결국 이뤘습니다.

 

모국어로 공부하는 미국 아이들도 힘들어하는 간호학과 공부를 하며 정말 힘든 순간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고, 때로는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 싶은 그리움과도 싸워야 했고, 학생비자를 가진 외국인 신분으로 취업준비를 하며 좌절과 시련의 연속이었어요.

 

"나는 안되겠다.", "더 이상 못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제 자신을 다잡았더니 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해낼 수 있었습니다.

 

간호 학생일 때는 병원에서 실습하며 만나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는데, 학교를 졸업한 지 4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제가 신규 간호사와 간호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답니다.

 

어제도 실습 나온 간호 학생과 같이 일 했는데 사소한 것에도 신기해하고 하나라도 배우려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가르쳐 주는 입장에서 정말 뿌듯하고 행복해요.

 

올해로 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끝난 지 10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제가 이룬 것들을 돌아보니 감격스럽고, 지금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이후엔 제가 어떤 꿈들을 이뤘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르네요.

 

이제서야 제가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에서 미국 간호사가 된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눴는데 저의 이야기가 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친구들과 부모님, 그리고 미국 간호사를 꿈꾸는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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