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항공 KE5036편 에어버스 애틀란타-인천 직항 탑승후기

출발: 미국/애틀란타 2018년 12월 11일 오전 12시 51분

도착: 한국/인천 2018년 12월 12일 오전 5시 10분


2018년 가을학기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기숙사에 돌아와 정신없이 나머지 짐을 싸고 학교를 떠나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애틀란타 공항 International terminal (국제선 탑승 터미널)에서 체크인을 하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 나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더라고요!



애틀란타 공항에서 본 한국을 나타내는 크리스마스 트리

한국 국기를 미국에서 보니 반갑고 신기했어요.


보안검색대를 지나자마자 늦은 저녁으로 치킨랩을 사먹고 미시간에 계시는 호스트맘께 한국에 잘 갔다오겠다고 전화드렸어요.


공항을 구경하고 쇼파에 앉아서 잠깐 쉬다보니 비행기 탈 시간이 되어서 게이트로 갔답니다.



애틀란타에 한인 인구가 많고 한국의 인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여서 게이트에 한국인들이 정말 많았어요.


성격이 급한 한국인들 답게 탑승시간이 한참 남았는데도 줄을 서길래 역시 한국인들 답다는 생각을 하며 저도 일찍부터 줄을 서 있었어요.


보통 한국에 갈 때 에어캐나다 애틀란타-벤쿠버-인천 노선을 이용했었는데 한국인이 거의 없고 미국, 캐나다인이 대부분이던 애틀란타-벤쿠버 노선에서는 탑승 시간이 되어서야 천천히 줄을 서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인이 많은 애틀란타-인천 노선이라 탑승도 빨리하고 내릴때도 비행기가 멈추기도 전에 통로에 서있다 빨리 서둘러 내리는 한국인들의 모습에 왠지 모르는 친근감이 들었고 진짜 한국에 간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설렘을 가득 안고 탑승한 비행기


비행기에서 잠을 잘 못자는 저는 밤비행기에서 편하게 잘 수 있도록 비행기를 타기 전에 세수와 양치를 하고 수면유도제를 먹고 탑승했어요.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꺼내 본 기내식 메뉴판


자리마다 놓여있던 기내용 슬리퍼.


2015년 여름에 탔던 델타항공 인천-디트로이트 노선에선 슬리퍼를 제공하지 않아 운동화를 신고 화장실에 가느라 다리 부종때문에 불편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엔 슬리퍼가 있어서 편안했어요! 


델타항공은 주로 미국 국내선만 타다가 오랜만에 델타항공을 타고 한국을 갔는데 이번 비행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건 델타항공은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한다는것!


아쉽게도 델타항공 무료 와이파이로 모든 인터넷을 이용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문자 앱 (페이스북 메신저, 인스타그램 DM, 카카오톡 등)만 이용할 수 있답니다.


그래도 심심하지 않게 엄마, 아빠, 친구들과 카톡하며 비행 할 수 있는게 어디예요.


각 자리마다 책이 꽂혀진 곳에 와이파이 사용법이 적힌 책자가 들어있어요.



잘 준비를 다 하고 비행기를 탔는데 안정권에 진입하자마자 기내식을 주길래 배고파서 일단 맛있게 먹었어요.


오랫동안 한국음식을 먹지 못했어서 한국음식 비빔밥으로 선택했어요.


맛은 있었지만 비빔밥에 들어있던 나물들이 원래 비빔밥에 들어가는 일반적인 나물이 아니여서 조금 아쉬웠어요.


식사가 끝날 때쯤이였나 기장님이 안내방송으로 승객 00가 여자친구한테 할 말이 있다고 여자친구가 뭐라고 답했는지 잠시 후 다시 안내방송 해 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잠시 후 기장님이 00가 여자친구에게 프로포즈를 했는데 여자친구가 Yes! 라고 답했다고 안내방송으로 얘기해주셔서 비행기 안에 영어를 알아들은 사람들은 다 박수 쳐 주었어요. 


이때 당시만 해도 로맨틱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제 미래 남자친구는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비행기 안에서 프로포즈를 받고 아직 결혼생각이 없어서 거절하면 그때부터 다시 돌아오는 시간까지 얼마나 어색한 여행이 되겠어요.



기내식도 먹었고 영화도 한편 봤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 한국까지의 비행

애틀란타-인천 노선이 전세계 최장거리 노선 중 하나라고 하네요.



자다 깨다를 몇번 반복하고나니 나온 간식

프리타타는 맛있어서 다 먹었지만 요플레는 원래 좋아하지 않아서 다 먹진 않았어요.



항상 경유해서 한국에 가다가 처음으로 직항을 타 봐서 14시간이 넘는 비행은 처음이였어요.


오래 앉아있다보니 다리도 붓고 허리도 아픈데다가 수면유도제의 약빨로 비행하는 내내 졸리긴 했지만 잠이 들지 않아서 더 힘들었어요.



 두번째 기내식으로도 한식을 선택했어요.

한국에서 먹은 것 못지 않게 맛있었던 양지불고기. 



조명 색이 계속 바뀌어서 예뻤던 비행기 내부.

기내식과 간식을 줄 때만 불을 켜두고 식사가 끝나면 불을 꺼줘서 어두웠어요.



주는 밥을 먹고 불꺼주면 자는 사육을 당하다보니 140시간 같았던 14시간 17분의 긴 비행 끝에 한국에 잘 도착했습니다.



거의 1년 반만에 밟아본 한국땅



수하물을 찾으러 가는 길

5시가 조금 넘은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이 많아서 놀랐어요.


비행기 안에서 작성한 세관신고서에 유제품 (크림치즈)을 갖고왔다고 체크했어서 입국장에서 제 세관신고서를 보시고 나가는 곳에서 옆쪽 짐 검사하는 곳으로 저를 보내셨어요.


농장이나 개인이 만든 치즈는 안되지만 월마트에서 파는 제품은 한국에 가져와도 된다고 이미 알고 있어서 당황하지 않고 짐검사 잘 받고 입국장 나왔어요.


입국장 나오자마자 새벽부터 저를 데리러 나오신 아빠를 만나서 학교에서부터 집까지 안전하게 잘 왔답니다!


비행시간이 길어서 힘들었지만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승무원이 많아서 편안한 마음이 들었고, 기내식, 서비스 등 만족스러운 비행이였어요!


아래의 "공감♡"버튼을 눌러 스텔라를 응원해주세요! 댓글과 공감은 로그인이 필요 없어요:)

Posted by adorable stella


그동안 블로그에 새 글이 올라오지 않아서 제가 어디서 어떻게 지냈는지 잘 살아는 있는지 궁금했던 분들 계시죠!?


블로그에 글이 안올라오던 약 한달동안 저는 기말고사를 봐야 했었고 기말고사 마지막날 오후 학교를 출발해 밤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갔었답니다.


12월 11일이 막 된 밤 12시 반, 미국 애틀란타 공항을 출발해 14시간을 조금 넘게 날아 한국시간 12일 오전 5시쯤 한국 인천공항에 도착했어요.


공항에 저를 마중나오신 아빠를 만나 반가운 마음도 잠시 인천공항을 나와 주차장으로 가는데 정말 너무 춥더라고요.


항상 여름방학때만 한국에 가다 지난 여름에는 여름학기를 듣느라 한국에 가지 못했어서 4년만에 처음으로 겨울에 한국에 갔는데, 따뜻한 곳에 살던 저에게 한국의 추운 새벽공기는 제가 정말 한국에 도착했다는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줬어요. 


미국에서부터 순댓국이 너무 먹고싶어서 한국에 가기 전부터 아빠한테 공항에서 만나면 저를 바로 순댓국집으로 데려가달라고 했었는데 비행기서 내리기 직전에 이미 밥을 먹어서 배불렀고, 일단 집에서 저를 기다리고있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 순댓국은 다음에 먹기로 하고 공항에서 바로 집으로 왔었답니다.



벌써부터 그리운 우리동네.


한국에서의 첫 저녁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미국에서부터 먹고싶었던 샤브샤브와 월남쌈을 먹었어요. 


1월 7일에 저희학교가 2019년 봄학기 개강을 하는지라 1월 6일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였는데, 3주가 조금 넘는 짧은 시간동안 한국에 체류하다보니 한국에 오기 전부터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잡기 시작했었어요.


짧은 시간동안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많아서 한국에 있는동안 거의 쉬는 날 없이 바쁘게 지냈답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치과, 안과 등 병원을 다니느라 바빴고 제가 한국에 도착했던 그 주말에 호주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사촌언니가 잠깐 한국에 들어와  부산에서 결혼식을 한 덕에 엄마랑 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 외가 식구들도 오랜만에 볼수 있었고 중학교때 이후로 본 적 없는 사촌언니도 7년만에 다시 볼 수 있었어요.


미국에 오래 살다보니 요즘 한국에서 핫한 곳이 어딘지 맛집은 어디인지 잘 모르는 저를 위해 제 친구들이 다 계획을 세워줘서 얼마나 고맙고 미안했는지 몰라요.


친구들 덕분에 광화문과 청계천에 가서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보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기분도 느껴볼수 있었고, 요즘 정말 유명하다는 익선동에 두번이나 놀러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예쁜카페에서 차도 마시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고, 홍대와 강남에서 밤새 친구들과 놀며 잊지못할 girls' night out (여자들끼리 밤에 외출해서 노는 것)을 보내기도 했었어요.





10년지기 친구랑 익선동에 갔던날.

너무 맛있었던 일본가정식 식당 심플도쿄와 이름처럼 가짜 감나무 인테리어가 예뻤던 카페 감꽃당.




교회언니, 교회친구와 익선동에서.

1시간을 기다려 먹을 수 있었던 일본 가정식 호호식당과 너무 예뻤던 호텔컨셉의 카페 세느장.





9년지기 친구와 광화문, 청계천에 갔던 날.


미국으로 돌아오기 이틀 전 10년지기 친구를 만난 날엔 미국에서부터 먹어보고싶던 곱창을 처음으로 먹어봐서 너무 좋았고요!  



10년지기 친구와 곱창을 먹고 너무 맛있어서 출국 전날 엄마랑 또 곱창을 먹으러 갔었어요!


추운데 피곤한 상태로 밖을 계속 돌아다니다보니 나을만하면 감기가 다시 걸리고 그래서 크리스마스 며칠 전부터 출국 이틀전까지 계속 아팠어요.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보고싶었던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보니 언제 아팠냐는듯이 다시 에너지를 얻곤 했었지요.


미국에서 유학하며 항상 보고싶었던 중학교친구들, 교회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을 일년 반만에 다시 만나 제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수 있어서 어느때보다도 따뜻했던 겨울이였어요.


4년만에 한국에서 맞은 크리스마스와 제 생일 그리고 새해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어서 좋았고 오랜만에 한국에 온 딸을 위해서 맛있는 음식도 해주고 편하게 지내다 갈 수 있게 해준 엄마, 아빠, 동생한테도 고맙고 저도 더 잘할걸 하는 마음에 미안하기도 했던 시간들이였고요.


3주가 조금 넘는 시간동안 여행객으로서 한국에 머물면서 좋은 추억들 많이 만들고 다시 미국에 잘 돌아왔어요.


블로그 글을 쓰기위해 한국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며 겨울방학의 추억들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한국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낸 시간들이 그립네요!


이번에 여러 친구들을 만나면서 서로를 오랜시간동안 보고싶어했는데 막상 만나니 며칠만에 다시 만난것같다며 시간은 참 빠르다고 감탄했는데 시간이 또 흘러 다시 볼 날이 곧 오겠지요.  


아래의 "공감♡"버튼을 눌러 스텔라를 응원해주세요! 댓글과 공감은 로그인이 필요 없어요:)
아래의 "공감♡"버튼을 눌러 스텔라를 응원해주세요! 댓글과 공감은 로그인이 필요 없어요:)

출처: http://stelladiary.tistory.com/entry/허리케인-마이클을-보내고 [스텔라의 미국이야기
아래의 "공감♡"버튼을 눌러 스텔라를 응원해주세요! 댓글과 공감은 로그인이 필요 없어요:
출처: http://stelladiary.tistory.com/entry/허리케인-마이클을-보내고 [스텔라의 미아래의 버튼을 눌러 스텔라를 응원해주세요! 댓글과 공감은 로그인이 필요 없


Posted by adorable stella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저는 병원에 입원 해 본 적도 없고, 제 가족 또한 병원과 인연이 깊지 않아서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 한 이후에도 간호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잘 모르고 간호학과에 지원했습니다.


간호 본과를 시작하기 전까지 저는 단순히 간호사는 환자에게 약을 주고 주사를 놔 주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었지요.


병원에 입원 해 본 적도 없고, 간호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왜 간호학과를 선택했는지 궁금하시죠?


꿈없던 만 15살의 저는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처음 오게 되었습니다.


교환학생 당시 병원에 갈 일이 딱 두 번 있었는데, 그 중 첫 번째는 미국 생활을 막 시작 하면서 학교에서 요구했던 건강검진 서류 때문이였고, 두 번째는 감기가 심하게 걸렸을 때 였지요.


미국 생활 초기, 건강검진을 하러 처음으로 동네의 작은 병원에 갔을 때, 저는 아파서 간 것이 아니었음에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고 영어를 못하는데 간호사 선생님과 잘 소통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무섭고 떨렸었지요.


간호사 선생님이 저를 진료실로 데리고 가셨고, 수술하거나 입원 한 적이 없는지 등의 간단한 Health history를 시작으로 시력, 청력, 검사를 포함한 간단한 건강검진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때 당시의 사진은 없고, 저희 학교 병원의 진료실 사진입니다.


의사선생님이 있는 진료실로 환자가 들어가는 한국과 다르게 미국 병원은 환자가 진료실에 앉아있으면 간호사 선생님이 먼저 들어오셔서 vital sign(맥박, 호흡수, 체온, 혈압 등)을 측정하시고 알러지 등의 여부를 물어보신 뒤 Nurse Practitioner (전문간호사)나 의사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진료를 봐 주십니다.


고등학생의 건강검진 임에도 불고하고 미국답게 설문지 중에는 성병과 피임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들도 있었기 때문에 호스트맘은 진료실에 들어오지 않아서 호스트맘의 도움 없이 간호사 선생님과 스스로 대화해야 했었는데, 영어를 잘 못했던 저는 혹시나 저를 답답해 하지는 않을까, 간호사 선생님의 말을 못알아듣거나 간호사 선생님이 내 말을 못알아듣지는 않을까 걱정했었습니다.


걱정 했던 것과는 정 반대로 간호사 선생님은 제가 잘 이해 할 수 있도록 손짓 발짓을 모두 동원해 저와 소통하려고 노력하셨고, 학교 생활 중에 힘든 일은 없는지,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데 힘든 점은 없는지 등을 물어보시며 제가 편하게 건강검진을 끝낼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간호학과 첫 학기를 끝낸 지금이야 이것이 환자와 좋은 관계를 만들고 환자의의 정확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한 "Therapeutic Communication (치료적 소통?)"임을, 간호학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환자의 문화에 대한 존중"임을 잘 알지만 그 때 당시에는 그저 목에 청진기를 걸고 깔끔한 간호사 스크럽 (간호사복)을 입은 간호사 선생님의 모습이, 저와 소통하려는 선생님의 노력이 마냥 멋있게만 보였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사실 저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공부에만 찌들어 사느라 커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 할 기회조차 없이 점수에 맞춰 대학에 가려는 여느 고등학생과 마찬가지로 저 또한 제가 뭐가 되고 싶은지 잘 몰랐을 뿐더러, 간호사라는 직업에는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미국 교환학생 생활이 익숙 해 지고 귀국을 두달 여 앞두고 있던 3월 말, 감기때문에 미국 병원에 다시 방문했을 때 제 인생은 달라졌습니다.


훨씬 늘은 영어 실력 덕분에 미국 병원에 처음 방문했을 때 보다 간호사 선생님과 더 잘 소통 할 수 있었고 간호사 선생님의 말을 훨씬 더 잘 이해 할 수 있었는데요, 선생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참 친절하고 따뜻해서 선생님과 대화하는 것 만으로도 감기가 다 낫는 느낌이였지요. 


Vital Sign (체온, 혈압, 맥박, 호흡)을 재 주셨던 그 간호사 선생님이 LPN (간조무사와 간호사 사이의 준 간호사) 이였는지, RN(3년제 또는 4년제 간호학과를 졸업한 간호사)이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간호사 선생님이 나가시고 진료를 위해 들어오셨던 NP 선생님 (Nurse practitioner-약 처방을 할 수 있는 전문간호사) 또한 매우 친절하셨습니다.


약을 처방받고 집에 와서 처방전에 써 있었던 다양한 의료인의 종류 (CNA-간호조무사, LPN-준간호사, RN-간호사, NP-전문간호사, MD-의사)에 대해 호스트맘께 정신없이 물어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나도 오늘 내가 만난 간호사 선생님들 같은 간호사가 되어야겠다" 결심을 한 이후로 지금까지 간호사가 되야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6월 초,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검정고시를 준비 해 그해 8월 검정고시를 보고, 토플과 SAT를 준비하고, 미국 대학교 유학을 준비 할 때도, 그리고 미국대학교 간호학과에 다니고 있는 지금까지도 "간호사" 라는 꿈은 언제나 저를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게 만듭니다.


간호 본과에 막 입학한 이번 학기 초, 저는 교수님을 붙잡고 한가지 질문을 여쭤봤습니다.


"교수님은 간호사를 하시면서 환자의 죽음을 많이 봐 오셨을텐데, 그때마다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많은 사람이 얘기하듯 익숙해지면 다 괜찮을 거라는 대답을 예상했던 저는 제 예상과 너무 달랐던 교수님의 대답에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네가 실습을 나가고 간호사가 되서 병원에서 일하면 네가 돌보던 환자가 죽는 일도 있을 것이고 여러 슬픈 일 때문에 울게 될 일이 많을거야. 그 때마다 환자 보호자 옆에 앉아서 같이 울어주고 환자와 환자 보호자의 아픔과 슬픔을 가장 가까이에서 공감 해 주면 되. 그게 우리 간호사들이 할 일이야."


교수님의 말씀처럼 저는 환자와 환자 보호자의 슬픔과 아픔에 익숙하지 않은, 그래서 환자와 환자 보호자의 슬픔을 가장 잘 공감 해 주고 같이 울어 줄 수 있는 간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단순히 약을 주고, 주사를 놔 주는 것이 간호사의 일 이라고 생각했던 저는 이번 학기를 보내며 간호사와 환자의 좋은 관계가 환자를 건강한 상태로 되돌려 놓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환자를 간호 할 때 책임감과 사명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항상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된다는 것을 잊지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골 마을의 작은 병원에서 만난 간호사 선생님들이 저에게 보여주셨던 친절과 Therapeutic Communication (치료적 소통)이 저를 낫게 하고 저에게 꿈을 갖게 했던 것 처럼, 저도 환자의 가장 가까이에서 환자에게 힘을 주고 좋은 간호를 제공하는 간호사가 되야겠습니다.


"공감♡"을 눌러 스텔라를 응원 해 주세요공감버튼과 댓글은 로그인이 필요 없습니다:)

Posted by adorable stella

지난 글 2017/03/27 -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을 통해 내가 얻은 것 에 이어 오늘은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을 선택하게 되면서 제가 포기해야 했던 것, 제가 잃게 된 것에 대해 써 보려고 해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항상 노력은 하지만 불가능 할 때도 있고 둘 중 하나는 포기 해야 할 때가 있지요. 


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와서 얻은 것도 분명 많았지만, 그만큼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았고 잃은 것도 많았어요.


반면에 안 좋은 습관이나 태도도 교환학생 덕분에 잃게 되었고요!


이번 글도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미국 공립 교환학생 때문에 내가 잃은 것


1. 한국에 관련된 과목의 지식


일년 (10개월)동안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떠나 먼 미국에 살면서 한국사, 국어 등의 과목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가 끝나고 미국에 왔는데 한국을 떠나있던 10개월의 공백이 생각보다 너무 커서 고등학교에 와서 집중 이수제로 배웠던 한국사와 한문 (사자성어 등)은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미국 고등학교에서도 공부 해야 할 것이 많았고, 그 당시에는 영어도 잘 안 될 때라 영어 단어도 나름 열심히 외웠는데 그 덕에 한국에서 배운 것들을 다 잊어버리게 되었지요.


저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그 여름에 검정고시를 봐서 합격 했는데, 오랜만에 한국어 책을 읽으니 잘 읽혀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국어 문제를 푸는 방법도 잃어버렸고 한국사는 처음보는 과목처럼 낯설어서 고득점을 받는데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미국 고등학교에 와서 미국사, 미국 정치, 미국 문학을 배우다 보니 지금은 오히려 미국사와 미국 정치, 그리고 미국 문학이 더 익숙해요.


한국 책을 읽을 일도 거의 없고 한국어를 말 할 일은 많아도 연필을 쥐고 쓸 일은 블로그를 할 때 밖에 없으니 맞춤법이 헷갈릴때도 많고요. 


2. 한국 친구들과의 관계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지구 반대편 미국에 있으면서 한국 친구들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멀어졌습니다. 


더군다나 미국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왔을 때 저희 엄마는 제 한국 친구들과 연락을 못 하게 하셨습니다.


중학교 친구들과는 오래 연락하고 지내서 미국에 있는 10개월동안 자주 연락하고 지내지 않았어도 지금까지 가끔 연락을 주고받으며 잘 지내고 있지만,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다니며 친해진 친구들과는 연락을 안하기 시작하니 다시 연락하는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으로 소식만 알 뿐 주기적으로 연락하고 지내는 고등학교 친구는 없어요.


3. 한국 학교 생활에 대한 추억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끝나고 한국 학교로 돌아갔다면 달라졌을 이야기지만, 저의 경우는 위에서 언급 한 대로 한국에 오자마자 검정고시를 봤습니다.


한국 고등학교를 한 학기 밖에 다니지 않아서 한국 고등학교에 대한 추억이 거의 없지요.


미국 고등학교를 다니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며 얻은 것이 워낙 많기 때문에 교환학생을 선택 한 것이 후회되거나 한국 학교를 중간에 그만 두게 된 것이 아쉽지는 않지만, 교환학생을 가지 않고 한국 학교에 계속 다녔으면 어땠을까 궁금하기는 해요.



4. 어른을 대할 때의 두려움


한국에서는 어른들을 대할 때 항상 예의를 갖춰야 하고 공손해야 해서 어른들과 이야기 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제 나이 또래의 학생들이 많지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겐 항상 예의를 갖추어 대우해야 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미국에서는 앞 집 할아버지도, 옆 집 아줌마도, 뒷 집 어린이도 나이만 다를 뿐 모두 친구예요.


미국에서도 학교 선생님 또는 막 만나서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당연히 예의를 갖추어 Mr, Ms, 또는 Mrs 등의 호칭으로 불러야 하지만 친한 옆 집 아저씨나 친구의 부모님은 그냥 이름으로 불러도 된답니다.


제 친한 미국친구 카너도 제 호스트맘을 이름으로 부르고, 저 또한 카너의 부모님을 이름으로 불러요.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지요?


이렇게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다 보니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윗 어른들을 편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을 버리고 어른들을 편하게 대하고 자연스럽게 대화 할 수 있게 된 것이지 미국에 살다 왔다고 해서 어른들을 버릇없게 대하거나 예의를 갖추지 않는건 아니라는 것 아시죠?


5. 가족들과의 추억


가족과 멀리 떨어져 미국에 살다 보니 친척들의 결혼식 등의 가족행사에 참여 할 수 없음은 물론, 가족들과의 소소한 외식도 할 수 없지요.


교환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제 엄마, 아빠 동생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갔거나 어디에 갔다왔으면 항상 사진을 보내 줍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사진을 보면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지만, 한편으론 나도 같이 갔으면 좋았겠다 싶기도 하고 함께 하지 못 한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지요.  


미국 교환학생이 끝나고 한국에 들어 갔을 때, 엄마, 아빠, 동생이 저만 모르는 이야기를 했을 때 제가 정말 이 집에 오랜 시간동안 없었다는 것이 실감났습니다.


지난 여름에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어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6.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


태어나서 평생을 같은 동네에서 살다가, 지구 반대편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사람들과 살며 새로운 곳에 적응 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낯섦이 싫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게 두려웠지만 이내 그것을 즐기게 되었지요.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와서 미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 잘 적응 하고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잘 마치고 나니,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서 미국 대학교에 와서는 더 쉽게 적응 할 수 있었습니다.



교환학생으로 10개월동안 살았던 미국 미시간주의 작은 시골마을.



10개월 동안 예쁜 추억들을 많이 만들었던 곳.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으로 좋은 학교에 다닐 수 있어서 좋았어요.



미국에 잘 적응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미국 친구들과.


제 친구들은(한국 친구들, 미국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 그리고 미국 친구들)저에게 새로운 곳에 발 닫는 순간 그곳에 적응한다고, 저는 더운 아프리카에서도 난로를 팔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친구들의 말 처럼 지금은 어느 곳에 저를 대려다 놔도 잘 적응 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공감♡"을 눌러 스텔라를 응원 해 주세요! 공감버튼과 댓글은 로그인이 필요 없습니다:)

Posted by adorable stella

영화에서만 보던 예쁜 2층집에 살게 되고, 노란 스쿨버스를 직접 타보고, 나와는 다른 인종의 친구들과 공부했던 교환학생 생활 9개월은 제 인생에서 가장 빛났고 행복했던 순간이였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때로 돌아 갈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들 만큼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 생활은 모든 것이 새로워 신기했고, 새로운 문화 배우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상상했던 것과 다른 것도 많았고, 직접 와서 살아보니 미국이라는 나라가 영화만큼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말이죠!


2017/03/15 - 내가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을 선택한 이유


지난 이야기에 이어서 오늘은 제가 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을 통해 얻은 것에 대해 써 보려고 해요.


교환학생을 통해 다른 친구들은 경험 할 수 없는 값진 것들을 경험했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살며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을 통해 내가 얻은 것

 

1. 영어실력


한국인이 한 명도 살지 않는 동네의 동양인은 저 혼자인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한국인들과 어울릴 기회도, 한국어를 쓸 일도 없었습니다.


이전의 글들에서 소개 했 듯이 제가 처음 미국에 갔을 때의 영어실력은 형편 없었는데요, 미국 교환학생 생활 동안 미국인 호스트맘과 살게 되고, 미국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면서 제 영어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습니다.


어딜 가도 기죽지 않는 당찬 성격 덕분에 미국친구들이 잘 못알아들어도 미국 친구들과 계속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고, 고맙게도 미국 친구들은 제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 해 주었습니다.


저는 항상 미국친구들에게 제가 말 할 때 문법이나 발음 실수를 하면 고쳐달라고 했었는데 제가 실수 할 때마다 진짜 영어 선생님처럼 잘 알려주었어요. 


사실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살던 중에는 제 영어가 얼마나 늘었는지 잘 몰랐는데,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제 영어가 많이 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지요.


교환학생으로 처음 미국에 가던 비행기에서는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보던 승무원 언니의 말도 잘 알아듣지 못했는데,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제 옆자리의 미국인 아주머니랑 즐겁게 수다떨면서 왔거든요!  


2. 자신감


사람들은 흔히 영어를 잘 하면 자신감이 생긴다고 하죠.


교환학생을 통해 얻은 영어실력 덕분에 "이제는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잘 하게 되었으니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살아 남을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 뿐만 아니라,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언어가 다른 미국에서도 잘 적응하고 지냈는데, 이제는 못 할 것이 없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큰 사건, 사고는 없었지만,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른 미국에서 언어적, 문화적 차이 때문에 별 일을 다 겪고 보니 정말 두려울 것이 없더라고요.


또한 미국인들은 사소한 것 하나에도 칭찬을 잘 해주는데, 그렇다보니 자신감이 쑥쑥 자랄 수 밖에 없었지요.


3. 소중한 인연



한국에 돌아오기 며칠 전 이였던 마지막 체육수업 날.

가운데 긴 검은머리가 저예요!


평생동안 같은 집, 같은 동네에 살다가 교환학생으로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미국의 작은 동네에 살게 되면서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이웃을 사귀게 되고, 학교에서는 꿈꿔왔던 미국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서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지내는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얻었습니다.


작은 동네여서 제 미국친구들은 서로 유치원, 초등학교 때 부터 알던 사이인데,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저를 친구로 받아들여주고, 지금까지도 가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으로 보고싶다며 연락 해 주는 미국친구들이 있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저를 9개월 동안 돌봐주셨던 파란눈의 가족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감사하지요.


제 블로그에 자주 방문 해 주시는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저를 돌봐주었던 호스트맘과는 지금도 자주 연락 하고 있고, 저에게 언제든지 놀러와도 된다고 하십니다.


저와 호스트맘은 이제 교환학생과 호스트맘 관계가 아닌 정말 딸과 엄마의 관계이고, 호스트맘의 가족 또한 저를 교환학생이 아닌 가족 구성원으로 생각 해 주셔요.


4. 평생 잊지 못 할 추억


학교가 끝나면 학원을 가고, 학원이 끝나면 독서실에 갔다가 밤 늦게서야 집에 돌아오던 지루한 한국에서의 생활과는 다르게 미국 생활은 하루하루가 재미있고 신기했습니다.


다양한 문화를 가진 거대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저와는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정말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지요. 


미국 친구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준 일, 미국 남자 사람 친구인 카너와 커플로 카너는 턱시도를, 저는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갔던 일, 미국 친구 레베카의 생일파티에 가서 처음 타코를 먹어 본 일, 수학시간에 계산기를 쓸 줄 몰라 고생했던 일, 미국 친구들에게 한국음식을 만들어 준 일, 락커 여는 방법을 몰라 수업에 지각했던 일, 할로윈데이에 사탕을 받으러 돌아 다녔던 일.....




댄스파티가 있었던 학교 체육관에서 카너와 찍은 사진이에요.




2013년 1월 19일, 저와 가장 친한 미국 친구 카너와 커플로 학교 파티 "Winter formal"에 갔어요.

미국에서는 원래 데이트 신청한 남자가 돈 다 내는거라고 레스토랑에서부터 파티 티켓까지 카너가 다 내줬어요.

미국 교환학생 생활 중 가장 재미있었고 기억에 남는 추억이에요. 


기뻤던 추억, 힘들었던 추억 모두 지금은 평생 잊지 못 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지요.


미국 고등학교 마지막 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평생 잊지 못 할 추억을 쌓았던 고등학교를 마지막으로 둘러보는데 추억들 하나 하나가 너무 소중하고 감사해서, 이런 소중한 추억을 잊고 싶지 않아서, 이제 다시는 이 때로 돌아 올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더라고요.  


5. 감사 할 줄 아는 마음


영어도 서툴고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저를 가족으로 받아들여 딸처럼 돌봐주신 제 호스트맘을 보면서, 나를 항상 도와주고 챙겨준 미국 친구들과 미국 학교 선생님들을 보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교환학생 호스트 패밀리는 돈을 받지 않는 자원봉사 가정인데, 외국에서 와 모든게 낯설어 어색해 했던 저를 잘 챙겨주시고 사랑 해 주신 호스트맘께 특히 사랑을 배웠고, 사소한 거에도 감사 할 줄 알게 되었지요.


호스트맘과 미국 친구들, 그리고 미국 선생님들에게만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배운 것은 아닙니다.


"가족과 가까워 지는 방법은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 이라는 우스갯소리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가족과 처음으로 떨어져 살게 되니 같이 살 때는 몰랐던 가족의 빈 자리를 느끼게 되었고, 그동안 엄마와 아빠가 나에게 해 주신 것에 대해, 친구처럼 지냈던 하나밖에 없는 동생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제가 미국에 와서 공부 할 수 있는 것은 가족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미국 대학교에 와서 기숙사에 살며 공부하고 있는 지금은 교환학생 때와는 또 다르게 공부 뿐만 아니라 빨래, 요리 등 모든 일을 제가 해야 하니 가족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서랍에 옷이 예쁘게 개어져 있는 것이, 밥솥에 따뜻한 밥이 있다는 것이 당연한 일인 줄 알았는데, 기숙사 생활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옷이 예쁘게 개어져 있는 것, 밥솥에 따뜻한 밥이 지어져 있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느끼게 되었죠.


6. 독립심


위에서 언급 한 것 처럼 지금은 집안일까지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 하지만, 사실 교환학생 때는 호스트맘께서 감사하게도 빨래, 요리 등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 학교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거나 결정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모두 스스로 해야 했어요.


간혹 아침에 못 일어나면 호스트맘이 깨워주시기도 하셨고, 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옆에서 지켜보시다가 도와주시기도 하셨지만 말이죠.


제 부모님은 저를 혼자 일은 스스로 해결 하도록 독립적으로 키우신 편이지만, 미국에 와서 모든 일은 스스로 해결 해야 하고, 영어를 잘 못하시는 부모님은 저를 도와 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살아님기 위해서 저도 모르게 독립적인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2016/06/20 -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는 미국 부모의 교육방식


위의 글에서 소개 했듯이 독립적으로 자라온 미국 친구들을 보면서, 미국에서 문화적, 언어적 차이로 인해 이런 저런 고생을 하면서, 그리고 공부하라고 시키는 사람 없이 스스로 공부하고, 부모님의 도움 없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며 독립심을 얻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지만, 그만큼 포기해야 했고 잃은 것도 많지요.


다음엔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을 하며 잃은 것에 대해 글을 써 볼게요! 


※"스텔라의 미국이야기"의 모든 글과 사진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허락없이 글과 사진을 사용하시는 것은 불법입니다. 제 글과 사진을 사용하고 싶으시면 방명록을 통해 허락을 받아주세요. 제 글과 사진을 이용하실 경우 출처를 꼭 남기셔야 합니다.※


"공감♡"을 눌러 스텔라를 응원 해 주세요!

공감버튼과 댓글은 로그인이 필요 없습니다:)

Posted by adorable stella

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알게 되고, 프로그램 신청서를 내고, 설레며 호스트 패밀리 배정을 기다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5년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미국 대학생이 되었고, 미국 교환학생 때부터 꿈꿔왔던 걸 하나씩 이루고 있어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누군지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제 블로그에 오셔서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아주시기 때문에 그동안 블로그에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쓴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세상은 좁다고 혹시나 저를 알아보는 분들이 계실까 싶어 사진을 공개하지도 않았고요!


그렇다보니 블로그가 뜻하지 않게 신비주의 컨셉으로 가고 있었는데, 방명록이나 댓글에 어떻게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는지, 교환환학생을 가기 전에 영어실력은 어땠는지에 대해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셔서 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미국 교환학생을 선택한 과정과 이유에 대해 제 이야기를 해 볼까 해요. 


제 글을 읽고 "스텔라도 해 냈는데 나도 할 수 있겠다!" 라는 자신감을 가지시는 분이 한 분이라도 있다면 너무 기쁠 것 같아요! 


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이 생소하신 분들은 먼저 아래의 글을 읽어주세요!


2016/05/30 - 유학원은 알려주지 않는 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 Q&A (Part 1)

2016/06/07 - 유학원은 알려주지 않는 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 Q&A (Part 2)

2014/08/10 - 미국 공립교환학생 호스트 배정 방법



2012.9.6. 처음 미국 가던날. 처음으로 혼자 타는 비행기. 처음으로 혼자하는 여행.


-뜬금없은 유학결정

제 블로그에 자주 방문 해 주시는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2012년 9월, 1학년 1학기가 끝나고 미국 미시간주의 작은 마을로 교환학생을 갔습니다.


방명록에 종종 외고에 다녔었는지, 우등생이였었는지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신데, 저는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의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평범한 학생이였어요.


다른 교환학생들도 그랬듯이 저도 미국 교환학생을 가기로 결정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었죠.


제가 중학교 3학년이던 2011년 11월, 학원에 갔다가 밤이 되서야 집에 돌아온 저에게 엄마가 뜬금없이 하셨던 말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너 유학가고 싶어? 미국으로 갈래, 아니면 캐나다로 갈래?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시점에 갑자기 무슨 유학인가 싶었지만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들어서 별 생각없이 망설이지 않고 유학을 가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사촌 언니, 오빠들이 외국생활을 하고 나서 긍정적이고 활발한 성격으로 바뀐 것을 보고 엄마도 저를 일년정도만 유학 보내시고 싶으셨다고 해요.


게다가 유학을 가면 언어도 배우고 문화도 배울 수 있으니까요.


미국은 총기사고도 많고 범죄가 많아 위험 할 것 같아서 "나 캐나다로 갈래!" 라고 대답했던 것 같은데, 엄마는 인터넷을 몇 번 더 검색하시더니 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있으니 그냥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잣집이 아닌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 온 저는 유학을 갈 수 있을 거라 상상도 해 보지 못해서 그때까지만 해도 며칠 뒤면 유학 얘기는 당연히 쏙 들어갈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유학은 돈이 차고 넘치는 집안에서만 가는 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요.


5년도 더 지난 일이라 잘 생각은 안나지만, 유학 얘기가 나오고 유학을 간절히 원하게 된 저와 엄마는 그때부터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하며 유학원을 검색하고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에 걸쳐 준비하고, 결정하는 유학을 저와 엄마는 뜬금없이 하룻밤에 결정하게 된 거죠.


-아빠의 반대와 주변의 반대


엄마와 저는 하룻밤만에 유학을 가기로 결정했지만, 엄마만 허락하신다고 해서 유학을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딸 없이는 못 산다는 딸바보 아빠는 생판 누군지도 모르는 집에 우리 딸을 어떻게 맡기냐고, 더군다나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호스트 패밀리가 학생을 선택하는 방식이기때문에 학생은 선택권이 없어서 위험하다며 유학은 절대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제일 큰 문제는 일년 뒤 한국에 돌아왔을 때의 적응이였고요.


교환학생이라는 단어도 못 꺼내게 했던 아빠에게 저와 엄마는 밤낮으로 교환학생 프로그램의 장점과 유학을 하면 좋은점 등을 계속 얘기했고, 유학원에서 교환학생 참가를 위해 봐야하는 시험을 보고 나서까지도 아빠는 계속 반대하셨습니다.


결국에는 저와 엄마가 유학을 너무 간절히 원하니 찬성이 아닌 둘이 알아서 하라고 포기 하셨던거 같아요.


아빠뿐만 아니라 제 친한 친구들 또한 제가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가는 것을 반대했어요.


이미 유학을 갔다온 친구들은 9개월 갔다와서는 영어실력도 거의 안늘고 갔다와서 한국 학교에 적응만 힘들어진다고 저에게 말 해주었는데, 이미 마음은 미국에 가있었던 저에게 친구들의 말은 들리지 않았었죠.



소중한 사람들과 쌓은 평생 잊지못할 추억이 있는 곳.


-내가 미국 교환학생을 선택한 이유


제가 블로그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가 미국 가기 전에 저의 영어실력에 대한 질문인 것 같습니다.


제 블로그에 방문 해 주시는 분들이 종종 "스텔라는 특목고나 자사고에 다녔던 똑똑한 학생이겠죠?",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 가기 전에 영어 엄청 잘 했었죠?" 라는 글을 남겨주시는데 이 분들의 환상을 깨야 될 것 같네요.


솔직히 말하면 제 영어실력은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아닌 딱 평균이였어요.


학교에서 성적표 받으면 영어성적은 500명이 조금 넘는 학생들 중 100등대 후반 200등대 초반 왔다갔다 했었으니까요.


그런데 남들과 달랐던 점이 저 또한 시험을 위한 영어는 싫어했지만, 영어로 말하는 것은 정말 좋아했어요. 


워낙 적극적이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어렸을 때 부터 길거리나 버스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제가 먼저 말 걸고 학원에서 배웠던 문장을 통으로 외워서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나요.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제가 초등학교 1, 2학년 때 이모 집에 가던 버스에서 제가 먼저 외국인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 외국인이 어린아이가 영어를 너무 잘 한다며 귀엽다고 저에게 사탕을 줬던 일이랑, 패밀리 레스토랑 놀이방에서 한국나이 4살쯤 되 보이는 흑인 남자아이랑 놀고있었는데 흑인 남자아이 부모님이 저에게 고맙다며 인사하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일이에요.


그때 당시에 영어를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라 저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외국인과 대화하고 소통 할 수 있다는게 너무 신기했어요!


게다가 어린아이가 영어를 너무 잘한다고 칭찬 해 주시니 영어로 말 하는 걸 좋아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엄마가 저에게 유학가고 싶냐고 물어보셨을 때 미국 문화를 배우고, 미국 친구들을 사귀고, 피부색이 다른 또다른 가족이 생긴다는 생각에 별 두려움 없이 간다고 대답했어요.


영화에서만 보던 예쁜 미국집과, 노란색 스쿨버스, 그리고 다양한 인종이 함께 어우러진 미국의 학교를 실제로 경험 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었고요.


미국 교환학생을 결정 할 때 미국생활에 잘 적응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보다는 미국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이런 기대감과 설렘 덕분에 미국 교환학생을 가기로 결정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가 YOLO (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 번 뿐) 인데 한 번 사는 인생 많은걸 보고, 배우고, 경험 해 보고 싶었어요.


제 영어가 비록 문법적으로 틀린 부분도 많고, 발음이 틀려서 제 말을 못 알아 듣는 경우도 있었지만, 적극적이고 거침없는 제 성격 덕분에 미국 교환학생으로 미국 고등학교를 다니던 9개월 동안 영어 정말 많이 늘었어요!


미국 공립고등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일반유학에 비해 훨씬 싸기 때문에 인기가 많지만, 싼게 비지떡이라고 앞서 다른 글에서 말씀드린대로 실패사례도 많고 열악한 호스트 패밀리 가정도 많아요.


게다가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야 한다면 한국학교에 잘 적응 할수 있는지도 중요한 문제이고, 저처럼 대부분의 학생은 미국에서 더 공부하기를 원하는데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지도 생각 해 봐야 할 문제이지요.


아이가 원하면 부모님 입장에서는 유학을 계속 지원 해 줘야 하니 저희 엄마는 주변에 누군가가 교환학생이나 유학에 대해 물어보면 미국에서 대학교까지 졸업 시킬 자신 있으면 유학 보내고 아니면 안 보내는게 낫다고 조언하십니다.


저처럼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끝나면 한국에 돌아와서 고등학교 1학년 2학기로 복학한다고 했다가 미국에서 더 공부하고 싶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계속 유학 비용을 계속 지원 해 줘야 하는데 그게 교환학생 때만큼 적은 돈이 아니거든요.


학비와 생활비 말고도 비행기표, 보험료 등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면 들지 않아도 될 돈이 드는 것도 생각 해 봐야 하고요.


혹시 교환학생을 생각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경제적인 문제 그리고 교환학생 후의 진로 등을 잘 생각해서 결정하세요!


※"스텔라의 미국이야기"의 모든 글과 사진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허락없이 글과 사진을 사용하시는 것은 불법입니다. 제 글과 사진을 사용하고 싶으시면 방명록을 통해 허락을 받아주세요. 제 글과 사진을 이용하실 경우 출처를 꼭 남기셔야 합니다.※


"공감♡"을 눌러 스텔라를 응원 해 주세요!

공감버튼과 댓글은 로그인이 필요 없습니다:)

Posted by adorable stella

티스토리 블로그를 막 시작한 Stella 입니다!

네이버에서 미국 교환학생을 주제로 한 블로그를 운영하다 티스토리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12년 9월~2013년 6월까지 Michigan주의 작은 마을인 Standish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했고요, 지금

은 한국에서 다시 미국 대학교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며 유학 준비 중 이랍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포스팅한 40여개의 포스트는 하나씩 티스토리로 옮길 생각이랍니다.

교환학생에 대한 질문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Posted by adorable stella
이전버튼 1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2012.9~2013.6 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 Stella 입니다:) 지금은 미국 대학교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adorable stella
Yesterday273
Today251
Total3,370,594

달력

 « |  » 2019.0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