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미국의 간호대학과 마찬가지로 우리학교 또한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 실습은 간호사 한명과 학생이 일대일로 짝을 지어 한 학기동안 실습을 하는데, 학생들이 가고 싶은 병동을 갈 수 있도록 선택권을 줍니다.


제가 마지막 학기 실습을 경쟁이 치열했던 분만실에서 하기로 결정했던 것은 단순히 슬픈 일들이 많은 다른 병동과는 다르게 기쁘고 신나는 일들만 있을 것 같아서 였는데요,아기를 낳고 행복해 하며 사진을 찍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고 그럴때마다 그 가족들이 평생 기억할 소중한 추억에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었지요.


제 간호사 선생님이 일을 하던 매주 토요일마다 열두시간씩 실습을 했었는데 분만실 실습이 어느정도 익숙해졌던 학기 중반쯤 제가 분만실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확 바뀌게 해주었던 일이 있었어요.


규모가 꽤 되는 병원이여서 고위험 산모가 많았고 내 간호사 선생님은 내가 더 많은 경험을 있게 다른 간호사 선생님들도 따라 다니며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미국 간호학과 마지막 학기에 실습을 나갔던 분만실 병동

미국은 분만실이 따로 없고 내원해서 아기를 낳고 몇시간 후까지 있는 병실이 분만실입니다.

대부분의 병동이 그렇듯 이곳도 모두 일인실이에요.


그 일이 있기 몇시간 전, 제 간호사 선생님은 자리를 비우셨었고 할 일 없이 간호사 스테이션에 앉아서 쉬고 있던 저는 바쁘게 움직이던 수간호사 선생님이 환자 병실로 부터 온 전화를 받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평소 저를 잘 도와주시던 그 수간호사 선생님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제가 하겠다고 나섰고, 바빴던 그 선생님은 저에게 환자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환자가 화장실에 갈 수 없으니 bedpan (침대 위에서 소변을 볼수 있게 만들어진 환자용 요강)에 소변을 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셨지요.


미국 병원은 분만 중에 통증 조절을 잘 해줘서 TV에 나오는 것처럼 환자가 소리를 지르는 일은 거의 없답니다.


하지만 제가 환자를 도와주러 환자의 병실에 들어갔을 때, 환자는 보호자 한 명 없이 혼자 소리를 지르며 침대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었어요.


"저기 환자분, 많이 아프죠? 많이 아프지만 소리지르지 말고 깊게 숨 쉴수 있도록 노력해 볼 수 있을까요? 당신의 아이가 충분한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나는 환자를 진정시키며 환자가 bedpan에 소변을 볼 수 있도록 도왔고, 나의 설명을 들은 환자는 어느정도 진정이 되는 듯 했지요.


환자의 병실을 나와서 그때까지도 바빴던 선생님을 붙잡고 왜 그 환자는 다른환자들과는 다르게 Epidural (분만시 진통을 완화시켜주는 척추마취의 종류)를 맞지 않고 있는지 물어보았어요.


"그 환자는 임신 19주 6일인데 벌써 진통이 시작되서 곧 아기를 낳을 것 같아요. 너무 갑작스럽게 병원에 왔고 지금은 너무 늦었어요."


"너무 슬프네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까 환자 방에 들어갔을 때 아기가 충분한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깊게 숨쉬라고 말했어요."


"괜찮아요. 바쁜 나를 도와줘서 고마워요."


한 시간 정도가 지나서 그 환자의 담당 간호사 선생님 함께 다시 그 환자의 방에 들어갔을 때 그 환자는 직사각형의 큰 패드가 흠뻑 젖을정도의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고 간호사 선생님은 나에게 빨리 나가서 도움을 요청 해 달라고 하셨어요.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뛰어가서 간호사 선생님들께 지금 당장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선생님이 필요하다며 도움을 요청하자 즉시 의사선생님과 수간호사 선생님을 포함해 여러명의 간호사 선생님들이 환자의 병실로 뛰어들어오셨습니다.


응급 분만을 준비하며 모든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 환자는 자기의 아기를 꼭 살려달라며 수간호사 선생님을 붙잡고 울고있었고 아기가 너무 작아서 살릴 수 없다는 수선생님의 대답에 나는 터져나오는 눈물을 꾹 참고 환자 옆에서 환자를 진정시키고 있었는데요, 그 때 많은 양의 피와 함께 너무 조그만한 아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그 순간 분주하던 의료진들은 모든 행동을 멈추었고, 무서울만큼 병실이 조용해 진 가운데 의료진은 손바닥만한 작은 아기를 잘 닦아서 우는 환자의 품에 안겨주었습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예요? 나는 아무것도 잘 못 한게 없다고요!"


죽어가는 아기를 품에 안고 울며 소리를 지르는 환자 옆에서 수간호사 선생님은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은 당신이 무엇을 잘못해서 벌어진 일도, 미리 예방할 수 있었던 일도 아니예요. 당신이 병원에 있는 동안 아기를 안고 있고 싶은 만큼 아기를 안고 있을 수 있어요."


간호학생이 되어 환자의 죽음을 처음 접한 저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었고, 환자의 옆에서 환자를 위로하던 수 간호사 선생님도, 도와주러 환자의 병실에 들어왔던 간호사들도 모두 울고 있었습니다.


너무 작은 아기의 죽음 앞에 우리 모두는 환자와 한 마음이 되어 울며 슬퍼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환자 옆에서 슬퍼하고 있지만 않았고 각자 간호사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상황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고 환자가 아기를 품에 안고 아기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까지도 울고 있던 저에게 수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환자의 죽음을 처음 봤다고 했는데 너무 프로페셔널 하게 잘 대처했어요. 분만실은 기쁜일도 많지만 그래서 그만큼 슬픈일도 많아요. 환자 옆에서 같이 울고 슬퍼해주는 것만 해도 그 환자에게 큰 힘이 되었을 거예요. 화장실가서 잠깐 진정하고 올래요? 이제 아기에게 천사 옷을 입혀서 사진도 찍어주고 발도장도 남겨줘야 되는데 슬퍼서 못 할 것 같으면 하지 않아도 되요."


"그렇게 말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같이 참여할래요."


 수간호사 선생님은 저를 꼭 끌어 안아주시며 병동의 창고로 데리고 가셨고 그 곳에는 작은 상자들이 쌓여 있었는데 박스를 열어보니 동물 인형, 사람들이 기증한 웨딩드레스로 만들었다는 천사 옷, 아기 모자, 그리고 슬픔을 이기는 방법이 적힌 책 등이 들어있었습니다. 



 제가 실습하던 병원에 있던 상자와 비슷한 것으로 구글에서 찾은 사진입니다.

https://frankieslegacy.wordpress.com/2014/03/22/making-memory-boxes-for-bereaved-parents/


그 상자와 장례식장들의 정보가 적힌 종이를 들고 수간호사 선생님과 환자의 방에 들어갔습니다. 


수 간호사 선생님은 환자에게 환자가 아기를 위해 할수 있는 옵션을 차분히 설명했습니다.


"아기를 위해 장례를 치루시고 싶으면 여기 장례식장 정보를 보시면 되고요, 아기를 병원에 놓고 가기로 결정하신다면 저희가 영안실로 보내서 화장 시킬거예요. 잔인한 말이지만 병원에 아기를 놓고 가기로 결정하시면 아기의 유골은 돌려드릴 수 없어요. 아까 말씀드린것처럼 병원에 있는동안 아기를 계속 품에 안고 있을 수 있고, 아기가 사망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아기의 몸이 딱딱해지거나 부종이 생길 수 있어요."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한 뒤, 상자에 있던 천사옷을 꺼내 아기에게 입혀 인형 옆에 아기를 눕히고 환자의 핸드폰과 병동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였습니다.


인형 옆에 천사 옷을 입고 잠자듯 누워있는 아기를 보니까 19주 6일만에 태어난 아기가 너무 작아서 다시 마음이 아팠고 세상에 잠깐 내려온 천사 같아 보였습니다.


여러장의 사진을 찍어주고 작은 발에 잉크를 묻혀 상자에 들어있던 책 속지에 발 도장을 찍어 준 뒤 환자에게 아기의 발도장을 더 남기고 싶은 곳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사진을 다 찍고 천사옷을 벗긴 뒤 다시 아기를 담요로 감싸고 병동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프린트에서 천사 옷과 함께 상자 속에 넣어 환자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날 오후, 아기를 병원에 놓고 가기로 결정하고 당장 퇴원하고 싶다는 환자는 의사와 간호사의 걱정을 뒤로하고 그렇게 병원을 떠났고, 환자가 떠난 뒤 아기를 담요로 잘 감싸 비닐 팩에 넣어 아기를 영안실로 보내주었습니다.


수간호사 선생님을 포함 해 많은 간호사 선생님이 저를 위로 해 주시고 이런 상황을 처음 겪으면서도 프로페셔널하게 잘 했다고 칭찬 해 주셨지만 그 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런 일들을 겪으며 더 훌륭하고 단단한 간호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지만, 막상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고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을 지켜봐야 된다는 것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였지요. 


시간이 흘러 저는 간호대를 졸업했고 면허시험을 합격 해 신규간호사로서 곧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병원에 근무하며 앞으로 환자의 죽음을 접하는 일을 많이 겪게 되겠지만 그때마다 환자의 죽음에 익숙해 지는 것이 아니라 제가 학생 간호사 시절 느꼈던 감정을 잃지 않고 환자의 보호자들과 함께 울고 슬퍼 해 줄 수 있는 간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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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 같지 않았던 졸업식이 끝나고 한 달 반을 바쁘게 지냈습니다.


졸업 전에 간호사 국가고시를 보는 한국과는 다르게 미국은 간호학과를 졸업해야 면허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지라, 그동안 공부도 열심히 했고 기숙사를 나와 취업한 병원이 있는 지역으로 이사가기 전 잠깐동안 친구들의 아파트로 이사도 했답니다.


그리고 마침내 6월 18일, 미국 간호사 면허시험인 NCLEX-RN 도 합격해서 학생간호사 타이틀을 벗고 공식적으로 미국 간호사가 되었지요!


6년 넘게 꿈꿔왔던 순간이 더이상 꿈이 아니라는 것이, 간호학과를 입학하면서부터 걱정했던 NCLEX-RN 시험이 끝났다는것이 아직도 실감이 안나고 얼떨떨합니다.


NCLEX-RN 시험은 컴퓨터로 보는데, 이번 문제를 맞으면 다음문제로 조 어려운 문제가 나오고 이번 문제를 틀리면 다음문제로 조금 쉬운 문제가 나옵니다.


총 6시간이 주어지고 최소 75문제에서 최대 265문제까지 나오는데 컴퓨터가 제 실력이 합격선 이상이라고 판단되면 75문제와 265문제 사이에서 시험이 꺼진답니다.


265문제 다 풀 생각으로 쉬는 시간에 먹을 간식도 챙기고 단단히 준비해 갔었는데 시험 시작 한시간 반도 안되서 75문제로 시험이 끝났어요.


이 시험을 보기 위해 간호대학을 다니며 울기도 많이 울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너무 힘들었었는데 75문제로 끝나서 좋았지만 높은 산처럼만 느껴졌던 시험이 이렇게 쉽게 끝나버려서 허무하기도 했어요.


원래 결과를 보려면 최소 48시간을 기다려야하지만 시험이 끝나고 집에 와서 점심을 먹자마자 트릭을 써서 합격이 거의 확실하다는 것을 알고 맘 편히 몇시간을 잤지요.


결과를 확인 해 볼 것도 없이 그 다음날 일어나 Georgia Board of Nursing (조지아 간호사회-한국의 대한 간호협회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에 로그인 해 보니 벌써 조지아주 간호사 면허가 나왔더라고요.


어떤 책들로 어떻게 공부했었는지 NCLEX-RN 합격후기와 시험이 끝나고 몇시간 내에 결과 보는 법까지 곧 자세히 올릴게요!


더이상 간호학생이 아닌 당당한 신규간호사로 저 미국병원 외과병동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Stella Kim, RN (Registered Nurse), BSN (Bachelor of Science in Nursing-간호학사)이 적힌 명찰을 달고 신규간호사로서 일 할 생각을 하니 떨리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요.


지금까지 잘 이겨내고 버텼으니 힘들다는 신규간호사 생활도 잘 견딜 수 있겠지요.


앞으로 들려드릴 미국 신규간호사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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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9~2013.6 미국 공립 고등학교 교환학생/ 2016.1~2019.5 미국 간호대학 간호학사 졸업/ 미국병원 외과병동 신규간호사 Stella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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